아침 일곱 시 반, 민재는 눈을 떴을 때 이미 알았다. 아내 지아의 베개 옆쪽, 한 뼘 정도 떨어진 시트에서 유리알처럼 남아 있는 그 향기.
말할 수 없이 섹시한 달콤함. 초콜릿에 젖은 목재, 바닐라를 삼킨 가죽. 분명 여자 향수였지만 지아가 쓰던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늘 흰 꽃과 은근한 머스크를 몸에 옷처럼 입고 있었다.
민재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코끝이 간지러워지는 지점, 숨결이 닿는 곳마다 배어든 향기가 자꾸만 손끝을 움직이게 했다.
지아가 누굴 품었을까.
잠든 사이 벌어진 밤의 실루엣
그날 밤 지아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두 시 열 분. 거실에서 들려오는 작은 신음 같은 숨소리.
조심스레 일어나 침실 문을 열었다. 민재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셔츠 단추 하나 풀린 채, 손에 무언가를 꼭 쥐고 있었다. 희미한 조명 아래, 그 손에서 은은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또 그 향수다.
지아는 멈칫했다. 민재가 가져온 것이 분명했다. 작년 생일, 그녀가 받았던 선물. 하지만 받자마자 화장실 캐비닛 깊숙이 넣어버린 병. 남자의 욕망을 불태우는 향이라 써 있던, 지아에겐 너무 민망해서 손에 잡을 수 없던 액체.
그런데 지금 민재는 그 향을 손에 묻혀, 자신의 목덜미를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눈은 감겨 있지만, 몸은 분명 그 향을 누군가에게 바르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지아는 문 뒤에 몸을 숨겼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남편이 누구를 생각하며 그 향을 뿌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 순간, 그녀는 그 향에 취해 있었다.
서랍 속에 숨겨진 타인의 흔적
민재는 며칠 후 회사 동아리 후배와 술자리를 가졌다. 스물일곱, 혜빈. 이름만 들어도 꿀처럼 달게 퍼지는 목소리의 소유자.
"선배, 요즘 집에서 향수 뿌리세요?" 혜빈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민재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가 알고 있었다. 지난달, 혜빈이 향수 선물을 받은 날. 민재가 그녀의 손을 잡고 "향 좀 맡아봐"라며 손목에 살짝 뿌려준 것. 회사 뒤편 주차장, 차 안에서.
그때 민재의 손에 남은 향이 혜빈의 목덜미에 스며들었다. 민재는 그 향이 지아에게 옮겼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 두려움이 손끝을 간지럽혔다.
혜빈은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선배, 그 향 너무 좋아요. 단돈 5만 원짜리인데도, 뭔가... 은밀해서요."
민재는 혀를 굴렸다. 그 은밀함이 지아와 민재의 침대 위에 남아 있다는 걸, 혜빈은 모를 것이다.
향기 속에 잠긴 두 사람의 진실
그날 밤 민재는 일찍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지아가 샤워를 마치고 들어왔을 때,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흰 꽃 향이 아닌, 바닐라와 가죽의 향이 났다.
민재는 눈을 감았다. 지아가 화장대 위에 있던 향수를 꺼내 쓴 것이 분명했다. 그 향수는 민재가 작년 생일에 받았던 것.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지아는 민재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둘 사이, 10센티 정도의 공간. 그 공간에 향이 서서히 퍼졌다. 서로의 향이 섞이면서, 민재는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원하는지, 이 향기가 대신 말해주고 있다.
지아가 속삭였다. "오늘... 누굴 만났어요?"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혜빔,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지아는 알았다. 그녀 역시 회사 후배, 준혁과 저녁을 함께했었다. 준혁은 늘 지아에게 "선배님, 이 향수 정말 잘 어울려요"라며 손목에 뿌려준다.
금기를 넘나드는 향기의 유혹
우리는 왜 이 향기에 끌릴까. 아니, 왜 이 금기를 넘나드는 향기에 끌릴까.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결혼 5년 차, 신선도가 떨어진 관계에서 '낯선 향'은 새로운 자극이 된다고. 하지만 그건 너무 창백한 설명이다.
우리는 그 향기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향기 뒤에 숨겨진 누군가의 욕망에 취한다. 민재는 혜빈의 손목에 뿌린 향이 지아에게 옮길까 두려워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두려움이 마구간질거렸다.
지아 역시 마찬가지. 준혁과의 저녁, 그녀는 민재가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민재의 귀에 닿지 않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닿기를 바랐다.
침대 위에 남은 마지막 질문
다음 날 아침, 민재는 눈을 떴을 때 향이 사라져 있었다. 지아는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었다. 시트는 뽀송했고, 향은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민재는 그 자리, 지아의 베개 옆 10센티 공간에 아직 향이 남아 있다고 느꼈다. 그 향이 누구 것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향기를 통해 민재와 지아가 같은 욕망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 그 늪에서 서로를 부르는 소리, 서로의 이름이 아닌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도, 그게 괜찮다는 것.
민재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아가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그 찰나, 민재는 물었다.
"그 향... 오늘도 쓸래요?"
지아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누굴 생각하면서요?"
민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도 대답하지 않았다. 둘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민재는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의 몸이 아니라, 서로의 욕망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대는 지금, 누구의 향기를 머리맡에 뒀나요? 그리고 그 향기가 아닌, 그 향기 뒤에 숨겨진 누군가의 욕망을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