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너무 예뻐. 이쁜 와이프가 있어서 난 정말 행복해.”
지수는 베개 옆에 놓인 셔츠를 매만지며 부드럽게 웃었다. 온몸에 파스 냄새가 확 살았지만, 그래도 남편은 그 냄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아침 7시 2분.
아침은 언제나 이 순서대로 흘러야 했다.
커피 원두 15g을 갈고, 유기농 우유 200ml를 끓이는 동안
남편의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흐트러짐이 없도록.
지수는 침대 끝에 앉아 니트를 한 꺼풀 두르고 있던 남편을 바라봤다. 그는 말했다.
“우리 팀원들이 너 봬달라고 난리야.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브런치 사진이 완전 대박이라며.”
지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반복했다. 죽으면 한 번도 먹지 못한 수프까지 다 끓여줄 수 있을까.
두 개의 서랍
침대 밑 서랍 한쪽에는 깊은 남색 상자가 들어 있다. 상자 안에는 죽음을 준비하는 도구들이 빼곡하다. 정리된 유언장, 공인인증서, 생명보험 증서, 그리고 정리해둔 사진들.
바로 위 서랍에는 남편을 위한 수면제, 안심할 수 있다는 병원 처방전이 들어 있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이름 안에 숨겨진 나는, 또 다른 나를 죽이려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얀 침대 위의 검은 시나리오
지수는 3년 전부터 매일밤 같은 시나리오를 쓴다.
1.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로 간주.
2. 보도 자료는 ‘선한 영향력을 끼친 인플루언서’로 고정.
3. 해시태그는 #영원히_사랑해 #빛나는_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그녀는 인스타그램에 올린 마지막 게시물을 미리 작성해뒀다. 흰 장미다발과 햇살이 어우러진 사진. ‘여러분,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라는 문구.
그러나 실제로는 갈수록 늘어나는 검은색 반점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욕망의 해부
왜 사람들은 ‘더 나은 척’하며 파멸을 준비할까?
그 이유를 드러내려면 먼저 거울 속의 눈을 뚫어야 한다.
거기엔 두려움이 있었다.
- ‘그래도 나는 특별해’라는 말이 누군가에 의해 반박당할까 봐.
-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스스로를 버려야만 할까 봐.
이 두려움은 ‘완벽주의자’라는 이름의 독으로 변했다.
실제 같은 이야기 1. 미소년 가족의 비극
2021년, 강남구 대치동. ‘도련님 가족’이라 불렸던 박예린 씨네 집.
엄마는 매일 아침마다 딸의 인스타그램에 ‘오늘도 행복한 우리 가족’이라는 문구를 올렸다.
그러나 예린은 딸의 방에서 발견된 쪽지를 숨겼다.
“엄마, 나는 죽을 때 네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네가 울면 내가 실패했다고 생각할 거니까.”
그날 이후, 엄마는 딸의 방을 그대로 둔 채 살았다. 그리고 매일밤, 딸이 남긴 쪽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내가 더 잘했더라면’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죄책감의 연쇄.
실제 같은 이야기 2. 브런치 사진 뒤에 숨겨진 내용
이수진. 33세, 광고회사 팀장.
그녀는 매주 일요일마다 ‘힐링 브런치’를 올린다.
에그 베네딕트, 바질 토마토 소스, 시금치 샐러드.
그러나 사진 뒤편, 냉장고 안에는 미뤄둔 자살 시도 계획서가 들어 있었다.
- 날짜: 다니엘 생일 다음날 (그래야 충분히 미안해하니까)
- 방법: 수면제 + 와인 (사진 속 와인이랑 동일 브랜드)
- 마지막 사진: 다니엘이 내 팔짱을 끼고 있는 장면
수진은 다니엘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언제나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조건으로 말려들었다.
‘사랑한다는 건, 끊임없이 네 편이 되어달라는 약속이었지만 결국 나를 파괴하는 데 사용됐다.’
금기의 향기
왜 우리는 이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의 욕망이 우리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완벽해’라고 찬양할 때, 실제로는 그의 내면을 파고들어 단 한 점의 흠이라도 없애버리길 원한다.
그리고 그 흠이 사라지면, 우리는 그를 놓아줄 수 없는 끈에 묶어둔다.
마지막 질문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서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리고 그 서랍을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숨죽인 또 다른 당신이 당신에게 무엇이라고 속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