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지금 딱 3cm만 와달라고 했잖아.
재영은 이불 끝을 꼭 잡고 몸을 웅크렸다. 3cm. 손가락 두 마디도 안 되는 거리인데, 그 사이가 얼음장이었다. 옆에 누운 지호는 조용히 코를 골았다. 아니, 곤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숨을 멈추고 있었다.
이불 아래 발끝이 스친다. 차갑다. 아니, 시원하다? 차갑다는 건 감정이 있는 단어고, 시원하다는 걔 감정이 빠진 상태다. 지금 이 온도는 후자였다.
어느 밤, 키스가 멈췄던 시계
재영은 시계를 본다. 새벽 1시 47분. 이 시각 6개월 전만 해도, 그녀는 지호의 눈썹을 하나하나 셀 만큼 가까이 있었다. 지금은 시간이 아니라 온도만 확인한다. 21.5도. 에어컨 설정 온도와 실제 침대 온도는 같다. 그러니까, 우리 사이도 기기가 맞춰준 대로다.
"왜 안 와?"
딱 3cm만 다가가면 돼. 근데 왜 안 와?
재영은 속으로 묻지만 대답은 없다. 지호의 숨소리만이 0.5초 간격으로 울린다. 그 사이에 수백 가지 대답이 떠돌았다. 피곤해, 감기 걸릴까 봐,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해. 아니면 그냥 안 하고 싶어?
두 번째 겨울의 등 돌리기
사랑은 24개월 만에 만기가 돌아온 은행 상품 같다. 만기가 되면 자동 재예치되지 않는다. 재영은 눈을 감고 6개월 전의 밤을 떠올린다. 지호는 샤워를 하고 나와 티셔츠 차림으로 침대에 뛰어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줍느라 허리를 숙이는데, 재영은 그 뒷모습에 손을 뻗었다. 그때는 3cm가 아니라 마이너스였다. 지호의 등이 그녀의 가슴에 닿았다. 그 순간 침대가 31도까지 올라갔다. 기기는 말했다. 이상 온도 발생.
지금 이 순간, 침대는 정확히 21.5도다. 지호는 등을 돌렸다. 재영도 등을 돌렸다. 두 개의 등이 서로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에게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은 없다. 3cm의 거리, 그것은 은하수였다.
민서와 현우: 두 사람이 처음으로 대본을 읽은 날
민서는 현우의 아파트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충분히 넓었다. 킹 사이즈. 둘이 누워도 50cm는 남는다. 처음에는 그게 좋았다. "우리 둘 다 넓게 쓸 수 있잖아". 근데 18개월이 지나니 그 50cm가 무슨 사막 같았다.
현우는 옆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였다. 화면은 밝았지만, 민서의 얼굴은 어둡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리를 움직여 현우의 다리에 살짝 닿으려 했다. 피부가 스친다. 현우는 딛다. 민서는 발바닥으로 현우의 종아리를 쓸었다. 하지만 현우는 몸을 3cm만 움직여 회피했다. 딱 3cm.
"야, 너 오늘 피곤해?"
맞아. 아니, 그냥 안 하고 싶어.
민서는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입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녀는 침대 옆 테이블 위의 리모컨을 집어든다. 에어컨 온도를 22도로 올린다. 따뜻해지면 몸이 반응할까? 1도 올렸지만, 현우의 몸은 1mm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 차가움에 끌리는가
몸은 기억한다. 첫 키스의 열기를, 첫 스킨십의 떨림을. 그리고 2년이 지나면, 그 기억이 먼지처럼 쌓인다. 그 먼지를 털어내는 방법은 없다. 그냥 덮는 거다. 새로운 이불을. 새로운 사람을.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2년차 커플의 침대 온도는 관계 만족도와 반비례한다고. 하지만 그건 너무 합리적인 설명 아닌가. 우리는 단지 사랑하는 방법이 달라졌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아니, 사실은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들었다라고 인정하기 싫은 거다.
"우리, 예전엔 딱 3cm도 안 왔잖아."
그땐 서로를 향해 3cm씩 움직였잖아. 지금은 서로를 등지고 3cm씩 뒤로 간다.
그 차가움은 사실 우리가 만들어낸 거다. 너무 익숙해져서, 너무 편해서. 처음엔 서로의 체온을 맞추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지금은 체온을 맞추는 게 게으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이불을 꺼낸다. 추워서 그래. 추워서가 아니라, 더 이상 따뜻해지고 싶지 않아서다.
마지막 3cm
재영은 조심스럽게 몸을 돌린다. 지호의 등이 보인다. 그 등은 한때 그녀의 손길을 기다렸다. 지금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한다. 재영은 손을 뻗는다. 딱 3cm만 다가가면 지호의 등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손을 멈춘다. 3cm 앞에서. 차가워서가 아니라, 닿았을 때 지호가 움찔할까 두려워서다.
지호는 눈을 떴다. 재영은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른 척한다. 그렇게 3cm의 거리를 유지한다. 그 3cm는 아직 사랑이라고 부르는 이름의 땅이다. 하지만 누가 먼저 그 땅을 밟을지, 아무도 모른다.
"너, 지금 닿고 싶어?"
맞아. 근데 닿으면 끝날까 봐.
침대는 여전히 21.5도다. 누군가의 발가락이 살짝 움직인다. 3cm의 거리가 2.9cm로 좁혀진다. 다시 3.1cm로 벌어진다. 그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차가움이 시작된 날부터, 우리 사이의 3cm는 결코 좁혀지지 않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