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오르가즘 뒤 허공을 더듬는 손, 그 눈먼 약속

정점에서도 채워지지 않는 결혼의 몸. 왜 우리는 헛손질을 멈추지 못하는가.

결혼·욕망·공허기혼자의 금기성적 집착심리

그녀가 떨며 내 이름을 두 번 불렀다. 아니, 정확히는 내 이름이 아니었다. 거의 비슷한 발음의—어쩌면 옛날 연인의 이름일지도 모를—그런 소리.

윤수는 한동안 눈을 감았다. 숨이 가쁘게 끊기는 동안, 방 안은 냉장고 소리만 요란했다. 침대 끝에 걸터앉은 내 허리에서 그의 손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리고 멈췄다. 꼭 내 복부가 아니라, 텅 빈 공기를 더듬는 것처럼.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남자의 손이 찾는 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자정, 흩어지는 체온

결혼 7년 차. ‘부부 의무’라는 말이 어색해진 지는 오래다. 일주일에 두 번, 목요일과 일요일. TV 예고편처럼 정해진 스케줄. 그럼에도 우린 끝없이 서로의 몸을 확인한다. 왜? 정점에 오르면 모든 갈증이 사라질 거라는 믿음 때문인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지.

윤수의 손이 더 깊숙이 파고들수록, 나는 더 단단히 닫힌다. 오르가즘이란 것이 생각보다 고요하다. 뇌가 하얗게 번쩍이는 3초,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던져지는 3초. 그 짧은 순간조차 내 몸은 뱉어낸다. ‘아직 부족하다’고. ‘더 채워라’고.


그가 사라진 목요일

"나 오늘 야근이야."

카톡 한 줄이 창을 때렸다. 오후 8시 47분. 윤수가 밀어 넣은 침대 시트는 아직 구겨져 있었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 누워, 오늘 밤 누군가에게 손을 허락할지 고민했다. 결국 손목을 돌려 침대 밑 서랍을 열었다. 가장 아래에 숨겨둔 작은 진동기. 남편이 사라진 목요일밤, 나는 남편보다 먼저 내 몸을 알았다.

그리고 물었다. 이건 윤수를 배신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구하는 건가.


비밀의 관악산 뒷길

서진이 얘기했다. 지난달, 그녀는 남펴보다 12살 많은 헬스 트레이너와 산책로 뒤편 차 안에서 입을 맞췄다고. 단순한 입맞춤이 아니었다. 남편이 평생 해본 적 없는, 눈을 가리고 숨죽이는 그런 입맞춤.

나는 그날 비로소 느꼈어. 내 몸이 남편의 영역이 아니라는 걸. 그런데 왜 돌아오는 길에 오히려 죄책감이 아니라 공허함이 밀려왔을까?

서진의 손가락이 떨렸다. 스타벅스 테이블 위에서 커피가 링을 그렸다. 그녀는 손등으로 닦지 않았다. 그 링, 마치 우리가 얼룩지게 흘린 욕망의 지문처럼.


왜 우린 멈추지 못하는가

심리학자 Esther Perel은 말했다. “안정을 얻기 위해 결혼했지만, 결국 결혼은 욕망을 죽인다.” 그 말이 맞다. 우리는 늘상 같은 몸을 품으면서도, 낯선 결핍을 더듬는다. 그리고 잘못 믿는다. ‘다음 번엔’이라는. ‘이번엔 더 잘하면’이라는.

결혼은 어쩌면 끝없는 반복의 제의다. 눈을 감고, 입을 맞추고, 정점에 올라, 그리고 눈을 떠. 텅 빈 방을 마주친다. 그럼에도 우린 손을 멈추지 않는다. 왜냐고? 비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보다, 비워내는 것이 두려우니까.


새벽 3시, 말라버린 숨

오늘도 윤수는 뒤척였다. 나는 그 등을 어루만졌다. 아니, 어루만지는 척했다. 그의 피부는 메마르고, 내 손톱은 날카로웠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서로를 더듬는 건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한다고 믿고 싶어서였다는 걸.

문득 묻고 싶어졌다. 텅 빈 너의 손바닥 위에, 내가 아닌 진짜로 널 채울 손이 있다면—그래도 넌 이 결혼의 허공을, 또다시 어루만질 건가.

그리고 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구의 손끝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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