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은 테이블 너머로 미소를 지었다.
- 진짜 착한 사람이면 좋겠어. 속물적이지 않고, 다툼도 안 하고, 내 말 다 들어주는.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계속했다.
- 그런데 말이야. 새까만 웃음이 치밀었다.
- 착하다고 생각한 애들이, 나중에 제일 지루하다고 느끼더라.
그가 건넨 달콤한 무관심
우리는 늘 착함을 수식어처럼 붙인다. 배려, 다정, 순종의 시너지라 믿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르다.
착함 따위는 내 손아귀에 쥐어진 힘의 반대편에 놓인 장식품이야. 내가 누를 수 있는 버튼이면서, 동시에 누르고 싶지 않은 버튼이지.
그래서 착한 남자는 안전하다. 상처를 줄 일도, 뒤통수를 칠 일도 없다. 대신 재미가 없다. 눈을 맞추면 눈이 먼저 피하는 사람 같은 느낌. 그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아서 끌리지 않는다.
아름의 작은 실험
회계사 아름, 서른두 살.
그녀는 늘 반복했다.
- 난 연애도 투자처럼 리스크 낮추는 게 좋아. 그러니까 이상형은 역시 착한 사람이죠.
그러던 어느 금요일 밤, 온라인 모임에서 만난 ‘현우’는 달랐다. 회사원이라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눈빛이었다. 대화는 짧고, 대답은 끊었다. 끝내 그는 말했다.
- 너, 다른 남자들이랑 똑같네.
그 한마디에 아름의 심장이 뛰었다. 착한 남자라면 절대 건네지 못할 독설. 그녀는 현우에게 연락했다. 그날 밤 모텔에서, 그는 침대 끝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 착한 척 말고, 네가 뭘 원하는지 말해봐.
아름은, 평소에 절대 꺼내지 않던 말을 꺼냈다.
- 나도… 지배당하고 싶어.
심리의 늪 속으로
우리는 착함에 대한 동시에, 지배당할 권리를 갈망한다. 인지부조화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믿는 순간 오히려 감정 충동에 더 취약하다.
‘착한 남자’는 내가 지배할 수 있는 무대장치다. 그러나 무대 위 연기가 끝나면, 나는 또 다른 주연을 찾아 나선다. 내가 지배당하는 그 순간만이 나를 완성한다.
금기와 욕망은 대척점이 아니라 쌍둥이다. 착함을 요구하는 말 속에는 *‘나도 악해질 권리를 달라’*는 외침이 담겨 있다. 그래서 여자들은 끝내 차가운 카리스마를 선택한다. 그들은 내가 아닌 ‘나’를 만들어준다.
다시 돌아온 지연의 시선
몇 달 뒤, 지연은 다시 그 자리에 앉았다. 이번엔 다른 남자와.
- 전에는 착한 사람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바람둥이랑 사귀게 된 거야?
지연은 잔을 돌렸다. 붉은 와인이 유리를 타고 흘렀다.
- 착한 사람은… 내가 착한 척을 할 수 있게 해줘. 그런데 그게 지겨워지면, 나도 몰래 내가 원하는 건 착하지 않은 힘이더라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 그래서 난, 내가 똑같이 못된 사람을 선택했어. 그래야 내가 미안해하지 않으니까.
내면의 거울을 들여다볼 때
지금 이 순간, 당신은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가.
온몸에 힘을 빼고, 누군가에게 이끌려 가는 상상. 그 순간 당신은 더는 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합리화를 즐긴다. 그래서 착한 남자는 늘 두 번째가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과연 착한 사람을 원하는가. 아니면 자신을 착하다고 믿고 싶은가.
착함은 결국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가장 잔인한 선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