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오줌 누러 가는 거야?”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채 누워있던 나는 문득 그 말에 심장이 꽉 죄었다. 눈을 감은 채로도 건장한 형의 시선이 내 하얀 이불의 흔들림 위에 꽂혀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그 불쑥 튀어나온 걸 들켰을까? 머리카락 끝까지 화끈 달아오르는 순간, 오줌이라는 말이 내 귓가를 때렸다.
오줌이 아니었다. 아침이 주는, 혼자만의 증거. 숨겨야 했다. 지금 당장.
이불 밑에 숨은 봉우리
모두가 똑같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던 6시 17분. 기숙사 314호, 417호, 502호—방마다 하얀 이불이 봉긋 솟아올랐다. 누가 먼저라고 할 수 없는, 퍼즐 맞추기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기지.
혹시 누가 봤을까.
옆침대 놈, 지금 나를 훔쳐보고 있나.
숨을 죽일수록 더 커지는 봉우리. 발끝까지 당기고, 다리를 꼬고, 허리를 쭉 펴도 꺼지지 않는 아침의 경고. 그 순간 우리는 모두 형님, 동생, 룸메이트를 속이는 위선자였다.
반가운 죄책감
왜 숨겨야 한다는 생각이 더 흥분을 돋울까.
202동 314호, 민수는 휴대폰 화면에 흐릿하게 비친 자신의 반사상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눈 앞에 펼쳐진 건 여자친구가 아니었다. 누가 들어올까 봐 고개를 숙이고 이불을 움켜쥐고 있던 룸메이트의 뒷모습이었다. 김민재. 축구부 주장. 건장한 어깨선이 이불 아래로 드리워지는 게, 마치 누군가의 허벅지처럼 보여서—
민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해, 형. 물론 민재는 들은 적 없는 고백이었다. 그대신 민재는 이불 속에서 철저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침의 규칙은 이렇게 잔혹했다. 서로를 못 본 척, 못 들은 척, 못 느낀 척.
하얀 침대와 검은 욕망
202동 502호, 태수는 생리대를 사러 간다는 거짓말로 화장실을 전전했다. 오줌이라고 하기엔 양이 너무 많았고, 색깔도 분명했다. 검은색 쓰레기봉투 속에 몰래 넣어 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증거.
“태야, 너 거기서 뭐 해?”
뒤에서 들려오는 수빈의 졸린 목소리. 태수는 허겁지겁 쓰레기봉투를 뒤로 숨겼다. 수빈은 그를 한번 힐끗 보고는 다시 누워버렸다. 태수는 떨리는 손으로 변기 뚜껑을 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굳어 있던 게, 이제는 반쯤 무너져 있었다.
잘 들켰을까.
하지만 수빈은 눈을 감고 있었다. 아침의 두 번째 규칙: 들킨 척도, 들킨 척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왜 아침을 숨길까
심리학자 루이스는 ‘사회적 난조(social desynchrony)’라는 말을 썼다. 아침 발기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리듬이지만, 그것을 공동체 앞에 드러내는 순간 부끄러움의 범죄자가 된다. 특히 기숙사 같은 낯선 밀집 공간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하얀 이불을 벗어나는 순간 ‘나’라는 단일 주체가 되지만, 그 이불 밑에선 누군가의 욕망이, 누군가의 시선이, 누군가의 상상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숨기는 것이 아니라 몸을 떨게 하는 설렘이 생긴다.
숨기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욕망이 되고 만다.
너는 지금도 하얀 이불을 움켜쥐고 있을까
누군가의 뒷모습을, 누군가의 숨소리를, 누군가의 흔들리는 이불을 지금도 기억하는가. 아침 6시, 아무도 말하지 못한 채 우리는 모두 하얀 침대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 안에 숨겨둔 이름—친구, 형, 룸메이트, 혹은 전혀 낯선 이의—를 떠올리며 삼켰다.
그래서 묻는다. 오늘 아침, 당신은 누구의 이름을 입안 가득 삼켰나. 그리고 그 이름을 아직도 불러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