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 한마디가 침대 위에 놓인 순간, 나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엄마는 나한테 애기처럼 보였대.” 연인의 한마디에 드러난 지하 심리—보호를 빙자한 지배, 연약함을 앞세운 권력역전. 가베딘 스위치가 작동하는 순간의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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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한테 애기처럼 보였대.”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연인의 눈빛이 달라졌다. 침대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그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래. 너무 작고, 말도 없고, 눈치만 보는 애기 같았어.”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방 안 공기가 굳었다. 내가 스물일곱, 그는 서른둘. 어른 연애라 생각했는데, 그 순간 나는 무릎 위에 앉힌 인형이 되어버렸다.


처음 듣던 밤, 목뒤가 따끔거렸다

우린 비가 오는 새벽, 오래된 단독주택 지하방에 있었다. 난방이 안 돼서 이불을 두 겹 덮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어머니 얘기를 꺼냈고, 나는 그저 듣고 있었다.

“엄마도 그런 눈빛이었어. 날 태어나게 한 사람치곤 너무 연약해보여서… 미안해할 때마다.”

그때 나도 모르게 말했다. “미안해...”

그러자 그가 웃었다. 눈가가 일그러지는, 애처로운 웃음. 그리고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말도 애기처럻 해. 죄인 맞네.”

내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욕망의 해부

우리는 누군가에게 **‘엄마’**가 되고 싶은 욕망보다, **‘애기’**로 남고 싶은 욕망을 더 숨긴다. 어린 시절 누려본 무조건적인 보호, 빈틈없는 관심, 벌레 하나도 죽이지 못할 연약함. 그 모든 게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안에 잠복해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은 터부다. ‘어른’이라는 사회적 마스크를 쓰고 살아온 우리에겐, 다시 아기로 돌아가는 것은 ‘무능’과 동의어다. 그러니까 우리는 누군가에게 애기처럼 보이도록 연기한다. 작은 체구, 조용한 말투, 상대 눈치만 보는 태도. 상대는 모르게 된다. ‘이 사람은 내가 보호해야 해’라고.

권력이 역전된다. 보호받는 척하는 순간, 실은 온전히 조종당하는 위치에 서게 된다.


실제 같은 이야기

사례 1. 희수, 29세


희수는 연하 남자친구 민재에게 늘 “나는 네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살 것 같아”라고 말했다. 민재는 그녀를 ‘작고 귀여운’ 취급하며 전화 통화 시간도 늘려줬다. 그러던 어느 날, 민재가 말했다.

“엄마가 네 사진 봤는데, 연애는 왜 하냐고. 너무 애같아서 아빠 손에라도 들어가야 할 것 같대.”

희수는 웃으며 받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 민재가 달라졌다. 대화마다 “엄마가 뭐라 그랬는지”를 언급했다. 희수는 본의 아니게 민재의 어머니와 경쟁하는 위치에 놓였다. 결국 민재는 희수와 헤어지고 “엄마랑 비슷한 사람”과 재빨리 결혼했다.

사례 2. 정우, 34세


정우는 자신보다 열한 살 연상 여자 선영과 만났다. 선영은 그를 ‘꼬맹이’라 부르며 간식을 사주고, 식사 챙겨주는 일에 익숙했다. 정우는 처음엔 불편했다. 그러다 어느 날, 선영이 그에게 물었다.

“엄마가 아닌 사람한테도 이렇게 꼬리 치는 거야?”

정우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선영의 품에서 잠이 들고 싶어졌다. 어린 시절 결핍이 떠올랐다. 선영의 가슴 아래쪽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을 때, 그는 생각했다. 이게 다 아니라고 하면 나는 다시 혼자야.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심리학자 래플리는 ‘가베딘 스위치’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어릴 때 부모에게 받았던 육성·통제가 뒤섞인 감정을 성인 연애에서 재연하려는 현상이다. 당신은 나를 지켜주지만, 동시에 나를 지배한다. 그 두려움과 안도가 뒤섞여 있을 때, 우리는 최고의 황홀을 맛본다.

또는 단순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엄마가 아닌 엄마’**로 인정받고 싶다. 자신의 욕망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길 바란다. 그걸 아는 순간, 우리는 상대를 ‘애기’로 만들 수 있다. “엄마는 나한테 애기처럼 보였대” — 그 말 한마디는, 지금부터 내가 너의 엄마가 될게, 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의 손에 무너지던 순간

그날 이후,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끝냈다. 하지만 가끔씩 홀로 있을 때, 그의 손이 머리 위로 다가오는 상상을 한다. 손톱이 이마를 긁는 느낌, 짧게 끊는 숨소리.

나는 정말로 애기였던 걸까, 아니면 그렇게 보이려고 했던 걸까.

그리고 문득,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애기’가 되고 싶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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