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가 더 이상 나의 남편이 아니었던 순간, 나는 숨죽여 지켜봤다

결혼 1주년, 남편의 목덜미에 남은 긴 머리카락 하나. 그것이 불러온 타인의 시선 속에서 나는 ‘내 남편’이 아닌 ‘어떤 여자의 남자’를 목격하고, 그 욕망의 온도에 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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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더 이상 나의 남편이 아니었던 순간, 나는 숨죽여 지켜봤다

“저기요, 당신 옷에 머리카락이…”

웨이터가 말끝을 흐렸다. 재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손가락으로 뒷목을 쓸어내렸다. 긴 머리카락 한 올이 둥글게 말려 나지막이 떨어졌다. 검은색. 나는 단발이야.

재우는 아무 말 없이 손에 드라이버를 감아 올렸다. 그 머리카락이 누구의 것인지, 왜 바로 그곳에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더 미치게 했다.


거울 속 남자의 미소

결혼 1주년 기념식장. 양초 불빛이 재우의 턱선을 갈라놓았다. ‘행복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1초도 채 걸리지 않았겠지만, 그 1초 동안 나는 다른 여자를 떠올렸다. 재우와 함께 이 식장 뒤편 주차장에서 키스하던 여자. 키스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녀가 재우의 차 문을 잡고 무언의 대기를 하는 장면을 난 몰래 목격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재우를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는 재우를 ‘내 남편’이 아닌 ‘어떤 여자의 남자’로 보는 것에 중독되었다.

‘지금쯤 저 여자는 재우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닿을 때마다 가슴이 화끈 달아올랐다.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이건… 흥분이었다.


욕망의 화학작용

심리학 서적들은 이런 감정을 ‘번아웃’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재우를 사랑했다. 사랑해서 더러워지고 싶었다. 내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더러워지는 걸 목격하고 싶었다.

그 욕망은 이렇게 번식했다.

  • 재우가 늦게 올 때마다 화장실에서 재킷 냄새를 맡는다. 향수와 담배, 다른 여자의 머리 세제 냄새가 섞여 있다.
  • 재우가 샤워하는 동안 침대 위에 누워 천장만 바라본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수증기를 맡으며 ‘그녀도 이런 냄새를 맡았을까’ 상상한다.
  • 재우가 잠든 뒤 휴대폰을 훔쳐본다. 메시지는 없지만, 사진첩에서 한 장의 셀카를 발견한다. 재우는 피곤한 얼굴로 카메라를 보고 있고, 뒤편으로 여자의 손가락이 겨우 살짝 들어와 있다. 손톱에는 은은한 펄이 반짝인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 더 사진을 찍어둔다. 재우가 모르게, 그리고 나만 아는 각도로.


엘리베이터 안의 두 여자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자. 이름은 소희였다. 재우의 동아리 후배라고 했다.

— 오늘 우리 좀 봤어요?
— …네?
— 아, 오해했군요. 그냥 느낌이 비슷해서요.

소희는 시원스럽게 웃으며 컵을 내렸다. 나는 그녀의 손톱을 봤다. 은은한 펄. 똑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소희가 말했다.

— 선배, 재우 선배랑 결혼하셨죠?
— …
— 선배가 좋아하시는 것 같아서요.

나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소희는 어깨를 으쓱했다.

— 사실은 아닌데, 선배가 그러잖아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티가 나요.

문이 열렸다. 소희는 툭툭 걸어 나갔다. 그녀의 향기가 엘리베이터 안에 오래 머물렀다. 바로 그 향기였다.


왜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갈구하는가

결혼 1년이 지나니 남편은 ‘내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욕망’이 되었다. 그 욕망의 온도를 재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재는 일이었다.

  •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재우를 보면, 나도 동시에 ‘타인’이 된다.
  • 재우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 눈빛 속에서 나는 내가 갖지 못한 ‘욕망의 결핍’을 본다.
  • 그래서 나는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 결핍이 나에게도 있는지.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열정적 사랑’이 식으면 ‘친밀함’만 남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친밀함’을 다시 ‘열정’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타인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마지막 질문

결혼 1년차, 나는 재우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했다. 아니, 사랑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재우의 뒷목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머리카락을 찾아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 어떤 시선으로 자신의 연인을 마지막으로 보았는가? 그리고 그 시선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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