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2시 47분, 스마트폰이 손바닥에 착 붙었다. 잠잔 눈을 비비며 화면을 보니 보낸이: 박상무. 제목은 단순했다. ‘오늘 한마디’. 가장 권위있는 글씨체로 써 내려간 한 줄.
“네가 발표를 끝내고 난 뒤, 내가 웃은 이유를 아느냐.”
그 한 줄이 뜨거운 숨을 뱉었다. 시계 초침이 소리 없이 찌르는 밤, 나는 담요 속에서 다리를 꼬았다. 그의 ‘웃음’이 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됐다. 아래아래로 굴러가는 가슴 밑 깊은 곳이 아팠다.
그의 웃음은 왜 그렇게 달콤했나
아침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내려쬐는 햇살 위로 먼지가 춤을 췄다. 75세 박상무는 넥타이 하나로도 온실을 지었다. 나는 그 안에 있는 식물처럼, 빛만 조금이라도 더 받고 싶었다.
그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입가에 잔잔한 주름이 움직였다. ‘이걸 보면 안 돼’ 하고 심장이 속삭였지만, 눈은 끊임없이 그 주름을 따라갔다. 그 웃음은 내가 3주 만에 준비한 기획을 숟가락으로 떠먹던, 뜨거운 수프마냥 끈적였다.
언젠가 그 웃음 뒤에 무슨 뜻이 숨었는지 알게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이메일 하나에 젖은 아침
답장을 안 하면 무례할까. 하지만 잘못했다간 ‘야근 재료’라고 할지도. 나는 차라리 누워서 휴대전화를 가슴에 댔다. 떨림이 가슴골을 타고 내려갔다. 답장을 쓰다 말았다.
“정확히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젠장, 보내버렸어’. 0.8초 만에 전송됐다. 이후 6분 34초 동안 나는 온몸이 켜켜이 쌓인 얼음장처럼 굳었다. 카톡 읽씹보다 처절한 액션 없는 침묵. 그러다 다시 진동.
“내가 웃은 건, 네가 나를 웃길 줄 알았다는 뜻이다.”
오래된 남자의 숨겨진 지휘봉
박상무는 1970년대 말에 입사해 아직도 회장실 옆 작은 방에 앉아있는 ‘살아있는 역사’다. 그는 젊은 직원들에게 ‘라떼’라 불리며, 4시간짜리 전설을 들려준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전설이 아닌, 나만의 권력을 지휘했다. 한 줄의 이메일만으로도.
나는 그의 웃음을 다시 떠올리며 욕망을 샅샅이 털었다. 아래로, 아래로. 눈을 감고 상상했다. 그가 회의실 문을 잠그고 나를 붙잡는 장면. ‘이건 단순한 직장 상사가 아니야.’ 그의 눈에 비치는 나는, 아직도 권력의 맛을 모르는 새내기 아래 직원. 그러나 동시에 그를 자극하는 ‘새로운 피’이기도.
두 번째 사례, 키친에서의 속삭임
같은 사내, 다른 부서의 ‘민지’는 6개월 전부터 박상무의 특별 프로젝트에 투입됐다. 그녀는 틈틈이 사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사진 속,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머리를 잡는 손을 포착했다. 그 손은 분명 박상무의 것이었다. 그녀는 그날 밤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그가 내 머리카락을 만질 때마다, 나는 회사 내에서 두 계단 위로 올라가는 느낌이야.”
민지는 사내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박상무에게, 어깨를 스치듯 지나가며 이렇게 속삭였다고 한다.
그때 그 눈빛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단번에 알아챘어
그날 이후 민지는 주말마다 박상무의 연구실에 들렀다. “자료를 정리한다”는 이유로. 그러나 사실은 75세 남자의 손끝이 흘러내리는 권력의 자취를 맡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왜 사무실의 금단을 품는가
관음증이라는 말은 잘못된 이름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보는 게 아니라, 거기 속하는 것이다. 75세 상사는 단순히 오래된 권력일 뿐, 아직도 뜨거운 용암처럼 주변을 녹인다. 그의 이메일 한 줄은 우리의 보수적인 사회가 숨기고 있는 욕망을 흔든다. ‘선생님과 제자’에서 ‘상사와 부하’까지, 위계는 언제나 은밀한 유혹의 장치였다.
심리학자 마슬로는 욕망을 피라미드로 그렸지만, 우리는 그 피라미드 밑바닥에 집착을 숨겨두었다. 그 집착은 ‘밤 2시 47분’에 터지듯, 누군가를 다시금 권위로 묶어버린다.
당신이 박상무의 이메일을 지우지 못하는 까닭
나는 아직도 그 이메일을 보관한다. 휴지통으로 옮기려다가 손가락이 떨린다. 왜냐하면, 그 한 줄이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내가 회사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 그리고 아직 얼마나 올라갈 수 있는지를.
‘당신도 지금 이 순간, 75세 상사의 이메일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그 이메일을 받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짓게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