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나한테 웃었어" 류현수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테이블 위 맥주잔이 울렸다.
- 야, 진짜야? 너랑 나랑 눈 맞았다더라.
- 개소리하지 마, 손에 잡히냐?
그는 미소를 지었다. 눈빛이 맥주 거품처럼 희미하게 부풀었다. 진정한 기쁨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죽인 승자의 미소였다.
손끝으로 스마트폰을 돌리며 류현수는 이제 손에 넣었다는 듯한 충족감에 잠겼다. 사실 그녀의 눈빛이 내게 머문 시간은 단 0.8초. 하지만 그 0.8초를 다른 남자들에게서 빼앗았다는 사실이 더 뜨거웠다.
뜨거운 건 연애가 아니라 방패막이
남자의 본능은 사랑을 향한 게 아니다. 그의 시선은 항상 옆에 붙어 있는 또 다른 남자를 향해 있다.
어린 시절, 놀이터 모래 위에서 그는 처음으로 '이김'을 맛봤다.
- 내가 제일 빨라!
- 나도!
- 너는 느려.
여자는 그때부터 뒷전이었다. 여자는 단지 점수판일 뿐. 누가 더 빠르고, 누가 더 많이, 누가 먼저.
여자를 만지는 순간에도 남자는 불안하다. 혹시나 누군가에게서 빼앗길까, 혹시나 누군가가 더 잘 할까.
그래서 그는 여자의 몸을 안는 것이 아니라, 여자를 점령한다. 군대식으로. 플래그 꽂듯이.
토요일 밤, 강남역 2번 출구
김준혁(28)은 그녀와 손잡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리는 사람들이 쏟아졌다. 그녀는 재킷 단추를 여미며 말했다.
- 연락 오는 거 맞아?
- 응, 너랑 같이 있는 거 보여줘야지.
실제로는 그녀에게 손을 잡은 게 아니었다. 뒤에서 걸어오는, 자기 대학 동아리 후배가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친구들에게 인증샷 찍어서 보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내 옆에 있는 여자가 아니라, 내가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준혁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셀카를 찍었다. 플래시가 터졌을 때, 뒤에서 지나가던 후배가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준혁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사랑이 아니라, 승리의 신호탄이었다.
왜 우리는 이 경쟁에 끌리는가
인류학자들은 말한다. 남성의 본능은 자원 확보에 있다고. 하지만 그 자원의 대부분은 애초에 여자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돈, 직업, 집, 차, 키. 모두 한 방향. 경쟁에서 살아남아, 다른 남자들을 무찌르는 것.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녀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게 좋았다.
- 그러면 다른 남자들은?
- 박살.
여자들은 종종 혼란스러워한다. "왜 나를 만지는 게 아니라, 남들이 나를 보는 걸 그렇게 좋아해?"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의 몸이 아니라, 그녀를 뺏길 수 있는 남자들의 시선이 더 흥분된다.
잠들기 전 그가 묻는 말
"너 오늘 누구랑 있었어?"
그는 너의 몸을 안고 있지만, 정작 눈을 감는 순간에도 다른 남자의 실루엣을 떠올린다.
그가 손을 잡았을까, 그가 웃었을까, 그가 내 자리를 노렸을까.
연애는 사라지고, 단 한 가지 감정만이 남는다. 질투가 아니라, 패배에 대한 공포다.
그래서 그는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를 지켜내는 것에 열광한다. 지켜내는 건 사랑이 아니라, 지배다.
마지막 질문
지금 그가 너의 눈을 마주치며 "사랑해"라고 말할 때, 혹시 그건 너에게 보내는 말이 아니라, 너의 뒤에 있는 '모를 남자'에게 보내는 선전포고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