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도 피곤해서 먼저 잘게.”
그가 침대 옆 램프를 끄자마자 나는 벌써 속옷 서랍을 열었다. 새까만 레이스 브라, 가죽 스커트, 그리고 살짝 떨리는 손끝.
오후 11:43. 나는 시끄운 음악이 반사되는 거울 속에서 결혼 5년차 아내가 아닌, ‘J’라는 낯선 여자를 응시한다.
첫 잔을 들기 전, 나는 이미 그를 배신했다
왜 나는 여기 왔을까.
클럽 문을 밀어 열자 몸을 때리는 베이스. 신경을 두드리는 듯 울려 퍼지는 저음. 그 순간 느껴지는 건 ‘탈주’의 미끄러짐. 남편은 지금 ‘우리 침대’에서 코를 골고 있을 테니까.
나는 바에 앉아 눈가를 짙은 글리터로 칠했다. 반짝이는 파편이 눈물처럼 번지는데, 이 눈물은 아무도 닦아주지 않아도 좋다. 나는 오늘 밤만큼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으니까.
"니꺼 왜 이렇게 초롱초롱해? 집에 불 켜놨어?"
옆자리 남자가 말했다. 그의 손이 내 허벅지 위로 살짝 미끄러질 때, 나는 반사적으로 웃었다. 어차피 남편도 내 다리를 몇 달째 안 쓰다듬었잖아.
실화처럼 픽션: 두 개의 시선
1. 지윤, 31세, 그녀의 내부일지
2023년 11월 17일 새벽 1:20
나는 ‘타이거홀’이라는 클럽 VIP석에 앉아 있다. 남편 승현이는 오늘도 회식이라며 11시에 잤다고 문자했다. 나는 그 문자를 확인하고 15분 뒤, 집을 나섰다.
"와이프는?" 옆 테이블 남자가 물었다.
"출장 갔어." 거짓말이 툭 튀어나왔다. 사실은 집에 있다. 단지 내가 없을 뿐.
그가 병따개를 열어 주는데, 코르크 소리와 함께 ‘쾅’ 하는 쾌감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나는 그가 반지 낀 손가락을 흘긋 보고 말았다. 저 얼굴, 이 낯선 냄새, 모든 게 우리 집 냄새와 달라서 좋아.
2. 미정, 35세, 2년 차 전세사기 부부
미정은 결혼 7년 차, 아이 둘 엄마다. 그녀는 오늘도 우유 한 병 사러 나간다며 출발했다. 동네 슈퍼는 아니고, 강남 ‘X-Lounge’.
거기서 그녀는 매주 수요일마다 똑같은 남자를 만난다. 본명은 몰라도, 그는 그녀를 ‘엠마’라 부른다. 미정은 남편이 사용하던 대학원 후배 이름을 빌려 썼다.
"엠마, 오늘도 일찍 나왔네. 누가 집에 있어?"
"아무도." 그녀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은 진실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아이도, 남편도, 미정도.
우리는 왜 ‘몰래’의 달콤함에 홀린가
심리학자 맥클러랜드는 ‘은밀한 동기’라는 말을 남겼다. 사람은 감춰야만 더 강렬해진다는 사실. 결혼반지를 끼고도, 끼지 않은 척해야만 떨림이 커진다는 것.
우리는 배신이 아니라 ‘안 보이는 배신’에 환장한다.
"그대는 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웃음을 터뜨리는가?"
누군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술잔을 비웠다. 그 잔을 내리자마자, 반지 자국이 새빨개졌다. 아직 남은 결혼의 온도, 36.5도. 그 잔인도를 뛰어넘는 저음의 열기가 더 달콤했다.
마지막 질문
새벽 4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은 레이스 브라 부분만 은은하게 빛난다. 그 빛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남편을 속인 게 아냐. 나는 결혼이라는 이름의 투명한 울타리를 속였을 뿐이야.
당신은 지금, 어떤 울타리를 속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