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20년 부부의 침대 위, 그녀만 비명을 삼켰다

침대 위에 누운 그녀, 남편의 등은 고요하다. 7천3백일을 함께했건만 그 고통은 여전히 홀로다. 금기된 관계의 속삭임을 따라가다 보면 당신도 혀끝에 맴도는 말을 삼켜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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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침대는 무덤이었다

“진짜 아프다고.”

희진은 남편의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 반응은 없었다. 코 고는 소리만 조금 더 커졌을 뿐. 이불 아래로 손을 뻗어 허벅지 안쪽을 움켜쥐었다. 쥐가 난 것처럼 비틀리는 통증이 밤새 반복됐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속으로 소리쳤다.

왜 너만 잠든 거야, 나는 여기서 죽어가는데.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단어

20년. 그 긴 세월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고통이 익숙해진 것뿐. 희진의 머릿속에선 ‘섹스’라는 글자가 초라하게 말라붙었다. 한때는 잠들기 전 입술과 발끝이 맞닿던 부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연간 두 번. 남편은 끝내고 자리로 돌아오면 “피곤하다”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래도 되는 거냐고.

그녀는 혼잣말로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침묵뿐. 그녀의 욕망은 방 안 공기처럼 투명해졌다. 사실 그녀는 단순히 섹스가 아니라 ‘관심’을 원했다. 눈을 맞추고, 숨결이 닿기를 원했다. 하지만 남편의 시선은 TV나 휴대폰 화면에만 머물렀다.

상현은 그녀의 통증을 몰랐다

상현은 아내가 잠에서 깨어 허벅지를 주무르는 걸 알고도 모른 척했다. 깨어나면 또 말해야 하니까. “아프냐”라고 물으면 “그래도 너는 나 안 보러 오지 않잖아”라고 돌아올 테니까. 그는 그 대답이 두려웠다. 45세의 상현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아무 문제 없는 남자’로 살아왔다. 아내의 고통은 그의 평화를 흔드는 돌출부였다.

그녀가 조용했으면 좋겠다.

상현은 이불 속에서 조용히 한숨을 삼켰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 조용해지면 그 또한 살아 있음을 증명할 방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목끝까지 차올랐다.

미진은 다른 방식으로 외쳤다

미진은 이웃 아파트에 산다. 남편은 매주 수요일 야근을 한다는 핑계로 새벽 2시 넘어서 들어온다. 그녀는 처음엔 기다렸다. 거실 불을 꺼놓고 앉아 있다가 현관 열리는 소리에 몸을 숨겼다. “아직 안 잤어?”라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을 세게 틀었다. 눈을 감고 자기 몸을 더듬었다. 물소리에 섞여 신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네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는 거울 속 눈빛이 초롱초롱하다는 걸 알았다. 수요일마다 그렇게 되풀이되는 은밀한 혼잣말. 결국 그녀는 남편이 들어오기 무섭게 침실 불을 껐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도 문 앞 발걸음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 소리가 침대 끝에서 멈추면 그제야 숨을 내쉬었다. 살아 있다는 증거는 그것뿐이었다.

우리는 왜 이 은밀한 외로움에 눈길을 주는가

부부라는 말은 둘을 가둔 울타리다. 바깥에서는 늘 ‘가장 친밀한 관계’라고 선전하지만, 안쪽에서는 서로를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7천3백일의 침묵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다. ‘허락된 금기’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은 의무로 바뀌고, 욕망은 관리 대상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 홀린 이유가 있다. 단순히 ‘별거 아닌’ 일상을 넘어서 우리도 언젠가 그 침묵 속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상현과 희진, 미진과 그녀의 남편은 우리의 어느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훔쳐본다. 그리고 안도한다. 나는 아직 아니다라고.

당신의 침실은 어떤 소리를 내는가

지금 이 순간, 당신 옆자리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당신은 무슨 냄새를 풍기는가. 당신이 고통스러울 때, 그 누군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당신은 앞으로 며칠을, 몇 년을, 어떤 침묵 속에서 살아갈 작정인가. 그리고 그 침묵이 깨질 때,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나 혼자 죽어간다”*고 말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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