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예의 뒤에서 웃고 있는 그녀의 발끝, 나는 아직 삼키지 못했어

정중한 미소 뒤에 숨긴 나의 가장 추악한 욕망. 그 몸짓 하나를 되새기며, 나는 아직도 그녀의 발끝을 뺏지 못했다.

욕망과예의금기된집착관계심리

“죄송합니다, 실례가 될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게 절제되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 사이 30센티 정도의 떨림 공간. 그녀는 조심스레 다리를 모았고, 발뒤꿈치를 살짝 올리며 내 신발 끝 위로 스쳤다. 살짝. 그 정도면 못 본 척할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프레임 단위로 끊어서 저장했다. 발가락 끝이 닿은 그녀의 발등 아래, 살이 퍼지는 흔적 하나까지.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고, 그녀는 괜찮다고 웃었다. 당연한 톤, 오차 1도 없이 눈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그녀는 먼저 나섰고, 나는 뒤에서 그 발걸음을 따라가는 척하며 한 걸음 뒤에 맞춰 섰다. 그렇게 예의 바른 거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나는 이미 반쯤 죄인이었다.


조용한 눈빛, 깊어지는 발자국

그녀는 몰랐겠지. 발끝 위로 스치는 그 순간, 나는 이미 그녀를 다 먹어치웠다는 걸.

예의는 매너가 아니라 방어막이다. 우리는 서로의 영역선을 1미터, 혹은 30센티로 조심스럽게 드러내며, 동시에 그 안쪽을 욕망한다. 발끝을 스친다는 건 집 안 가장 깊숙한 장롱 위에 손을 얹는 것만큼 은밀하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그 손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없던 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더 간절해진다.

나는 그녀의 발목이 살짝 붉게 달아오르는 걸 봤다. 그건 착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녀는 절대 발뒤꿈치를 다시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공간을 한 치도 넘지 않으려 했다. 그 순간 양립할 수 없는 두 욕망이 뒤섞인다. 예의라는 이름의 자제, 그리고 발끝을 잡아먹고 싶은 굶주림.


그날 밤 수연은 맨발이었다

수연은 옆집에 살던 그 누구였다. 정확히 말해, 같은 층 맞은편 복도 끝. 우리는 매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지만, 단 한 번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눈치로 말했다. 문이 닫히면 서로를 보지 않는다. 문이 열릴 때면 어깨를 스치는 척. 그게 전부였다.

그날도 똑같았다. 수연은 새하얀 양말을 신고 있었고, 문이 닫히자마자 그녀는 미끄러지듯 양말을 벗었다. 이유는 몰랐다. 아마도 잘못 짓눌린 발가락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맨발을 살짝 들어 올려 바닥에 털어 댔다. 나는 그 맨발의 굴곡을 봤다. 발등이 투영등 아래로 푹 꺼지는 그림자, 발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흔들리는 물결.

수연은 나의 시선을 봤다. 그러나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녀는 맨발을 살짝 뒤로 물렸다. 조심스럽고, 조용히. 그 장면은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떠밀고 당기는 듯한 착각을 불렀다. 그녀가 뒤로 물러날수록, 나는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섰다. 예의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수연은 다시 양말을 신었다. 그녀는 나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히고 나는 맨발의 흔적을 바닥에서 찾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냉기만 가득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녀는 결코 나에게 맨발을 보여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민재는 이야기를 멈췄다

한 달 뒤, 나는 회사 후배 민재를 만났다. 퇴근길, 지하 주차장. 그는 맥주 캔 하나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무심히 다가갔다. 그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문득 물었다.

형, 발가락에 집착하는 거 본 적 있어?

나는 말이 없었다. 민재는 계속했다.

나는 어떤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항상 예의 바르더라고요. 눈 맞을 땐 고개를 숙이고, 부딪히면 미안하다고 했죠.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저를 따라오다가 발끝을 밟았어요. 아주 살짝이었지만, 그때 느꼈죠. 이 사람은 결코 발끝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는 그 뒤로 그 사람은 저를 피했어요. 아마 자기 안의 욕망을 봤나 봐요.

민재는 한숨을 쉬었다.

저도 그 사람이 어떤 욕망을 품었는지 몰랐어요. 그냥 발끝을 밟은 게 전부였거든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 그 사람이 저를 보며 어떤 욕망을 느꼈는지 알았죠. 그래서 더 피하게 된 거예요. 예의라는 이름으로.

나는 그날 밤 엘리베이터 발판 위에서 민재를 떠올렸다. 수연도, 민재도, 나도. 우리는 모두 예의라는 이름의 그물 안에 있었다. 발가락 끝 한 치만 넘어가면, 서로를 잡아먹고 말 테니까.


왜 우리는 발끝만 바라보는가

인간의 시각은 본능적으로 아래를 향한다. 아기는 엄마 발끝을 먼저 본다. 그건 엄마가 어디로 갈지 알려주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 발끝은 더 이상 길잡이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발밑을 읽는다. 왜냐하면 그곳이 가장 민감한 영토의 끝이기 때문이다.

예의란 바로 이 끝선 위에 서서 서로를 빤히 바라보는 행위다. 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넘고 싶어하는 욕망. 발끝을 밟는다는 건, 상대의 마지막 방어막을 무력화시키는 일이다. 한 치만 침범하면, 더 이상 예의가 아니라 침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삼킨다. 입 안으로, 혹은 눈 속으로. 그리고는 말한다. 죄송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침묵적 동의’라 부른다. 서로 발끝을 스치는 순간, 은밀한 계약이 맺어진다. 우리는 이 공간을 넘지 않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이 계약은 허울이다. 넘지 않으려는 자의 욕망은 더 깊어지고, 막연히 기다리는 자의 굶주림은 더 커진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를 바라본다. 눈은 아니고, 발끝으로.


오늘도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문이 열릴 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발끝을 훔쳐본다. 양말이 흐트러졌는지, 발뒤꿈치가 벗겨졌는지. 내 눈은 늘 바닥에 있고, 내 고개는 는 절제되어 있다. 그래도 나는 아직, 예의라는 이름의 욕망을 끝내지 못했다.

문이 닫히면 나는 발끝을 내려다본다. 혹시 누군가가 나의 발끝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인다. 죄송합니다, 하고. 하지만 그 미소 뒤에, 아직도 내 욕망은 살아있다.

그래서 당신은 누구의 발끝을 아직도 삼키지 못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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