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3번 남자, 지갑 두고 갔어요"
투명한 유리벽 사이로 보이는 마네킹 같은 실루엣. 킬러힐 신은 그녀가 클럽 한복판을 지나자 남자들의 시선이 실시간으로 꿈틀거린다. 그런데 그녀가 멈춰선 곳은—깔끔한 까무잡잡한 셔츠에 데님 하나 걸친, 국내에선 5점도 안 줄 동안남 앞이었다.
여자는 웃으며 입을 연다. 손에 든 지갑을 내민다. "니꺼 맞지?"
남자는 대답 대신 허리를 약간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숨을 뱉는다. 순간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이미 내기는 끝났다.
아니, 돈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속으로 말한다. ‘저 여자는 분명 현란한 가방에 수천 달러가 들었을 텐데, 왜 저런 평범남에게?’ 고개를 저으며 우리가 무시하는 지점이 정확히 그가 공략하는 틈새다.
그녀는 돈이 아니라, 나를 기억할 수 있는 틀을 원한다.
뉴욕 맨해튼 클럽에서 LA 라이브 바, 파리 마레 지구까지. 나는 수십 번 반복된 장면을 목격했다. 꽉 막힌 남자, 즉 ‘로컬룩’에 머무는 이들이 누리는 은밀한 권력—그건 바로 절대적인 자기 장소성이다.
그는 자신의 지갑을 두고 간 척, 혹은 실수로 떨어뜨린 척한다. 그 지갑엔 운전면허증만 들어 있다. 신용카드도, 두툼한 현금도 없다. 하지만 그 한 장의 면허증엔 그가 사는 브루클린 브리지 바로 옆 아파트 주소가 찍혀 있다.
여자는 그 주소를 읽는 순간 무의식에 새겨진 지도가 돌아간다. 아, 저기는 진짜 뉴요커가 사는 곳이구나. 동시에 ‘나는 관광지가 아닌, 그의 일상에 잠시 끼어드는 외부인’이라는 초콜릿 같은 위험이 입안에 퍼진다.
케이스 파일 1 — ‘와인 한 병, 그리고 지하철 2호선’
사연主人公은 31세 한국계 미국인 ‘준’이다. 육군 장교 출신에, 지금은 연방청 데이터 분석가. 키 172cm, 평범한 얼굴, 연봉은 12만 달러 안팎. 그는 나에게 털어놓았다.
“LA 다운타운 rooftop bar에서 만난 여자, 하버드 로스쿨 졸업에 VC 펀드 일해. 처음엔 그녀가 나한테 눈길도 안 줬어. 근데 나는 그냥 바 옆 투숙객들이 떠난 테이블에서 그녀가 남긴 와인 한 병을 들고 와서 ‘이거 안 마실 거면 내가 가져가도 돼?’ 했지.”
와인 한 모금 마시며 그는 계속했다. “그러자 그녀가 웃더라. ‘그럼 나도 한 잔 받을까?’ 그날 밤은 결국 그녀가 샤프트 호텔로 나를 데려갔어. 믿겨? 내가 지불한 건 팁 15달러뿐이야.” 준은 말했다. 여자들은 *‘이 남자가 술값도 아끼는 한량’*이라 오해한다. 하지만 그는 단지 ‘그녀의 루틴이 아닌 우연’을 만들어낸 것뿐이다.
케이스 파일 2 — ‘에펠탑 사진 한 장’
이번엔 파리, 마레 지구의 작은 갤러리. 주인공은 에어비앤비 직원 ‘토마’. 프랑스 남자들 사이에선 ‘똥폼’이라 불리는 밋밋한 스타일. 그런데 그가 한국에서 온 여행객 ‘유진’에게 건넨 건 4년 전 찍은 에펠탑 사진 프린트 한 장이었다.
사진 뒷면엔 이런 문장이 수딩펜으로 적혀 있었다. ‘오후 3시 28분, 갑자기 비가 왔던 날. 나는 우산도 없이 걸었지.’
유진은 나중에 고백했다. “그 사진 보는 순간, 나는 갑자기 그가 아주 오래 파리에 살았을 거라 느꼈어. 유리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던 거지.”
토마는 사실 그 사진을 2유로 주고 분수대 옆 사진가게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그림자의 로맨스
우리는 질투하며 속으로 말한다. ‘저건 기만이야, 사기지.’ 하지만 그건 외로운 변명일 뿐.
뉴요커·파리지앵·사이공 로컬. 그들이 공유하는 공통 코드는 '나는 네가 떠난 뒤에도 여기에 남는 존재'라는 잔인한 최면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상대적 점유욕이라 부른다. 여행자는 ‘내일 떠날 나’의 시선으로 남는 자를 바라고, 남는 자는 ‘내일 떠날 너’를 자신의 공간에 가둬놓는다. 누구도 영원히 머물 수 없으니, 한 번의 밤에 영원의 미끼를 물게 된다.
그래서 평범남은 성공한다. 그는 화려한 팔찌나 두툼한 지갑 대신, **‘너의 일상을 나는 배회한다’**는 금기의 제스처를 건넨다.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의 이름
뉴욕 지하철 L호선, 파리 메트로 9호선, 도쿄 야마노테선. 문이 닫히는 순간, 당신은 누군가의 눈에 영원히 머물 수 없는 외부인이다.
그렇다면, 오늘 밤 당신은 어떤 지갑을 두고 가며, 누군가에게 어떤 위선의 열쇠를 건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