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옆에 있는데도 눈물 젖은 베개 위로 떠난 남자

그는 여전히 네 옆에 누워 있지만, 네 눈물이 적신 시트만큼 떠나 있다. 겉보기엔 완전한데, 속은 텅 빈 연애의 음습한 진실.

정서적 유령화침묵의 이별욕망과 권태관계의 결핍
옆에 있는데도 눈물 젖은 베개 위로 떠난 남자

훅(Hook) "밤새 울었어?"
그가 빈정거리듯 물었다. 네가 새벽 세 시에 숨죽여 흘리는 눈물 소리를 들었으면서도 그는 눈을 뜨지 않았다. 침대는 딱 두 사람 너비로 남아 있었지만, 너는 아침까지 뒤척이며 계속해서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눈물이 빠져나간 자리에 무게감도, 책임감도 남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너는 그의 숨소리마저 너무 가까워서, 조금만 더 가까이하면 부서질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한 침대에서 ‘떠나’온 사람에게 조용히 이별을 고할 수 있을까.

식어버린 체온

그의 몸은 아직 36.5도인 것 같았지만, 네 피부가 닿는 곳마다 숨이 차가워졌다.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해졌다. 그가 네가 우는 동안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의 무게, 네 어깨를 쓰다듬던 손의 온도. 그리고 그 피할 수 없는 단 한 마디, "왜 그래?" 네가 이유를 말하면 말할수록 그가 더 멀어졌다. 
어느 순간 ‘그를 떠나는’ 건 네 몫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떠난 뒤였다. 너는 그의 육체를 붙잡고 있었을 뿐, 그의 정서는 한참 전에 빠져나간 뒤였다. 그게 너를 미치게 했다.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게 ‘그’라는 환상이었기 때문이다.

욕망의 해부

우리는 관계에서 먼저 떠나는 사람을 미워하지만, 정작 끔찍한 건 유령처럼 **옆에 남아 있는** 사람이다. 그는 아직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네가 울고 있을 때만 나온다. 왜냐하면 그 말은 네 눈물의 댓가로 살아 있는 유령이기 때문이다.
그는 네가 아프고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만, 자신이 ‘선량한 연인’이라는 역할에 안도한다. 네가 펑펑 울수록, 그는 본인이 너의 구원자라는 환상을 키운다. 그러니까 울지 마. **그러면 그도 죽는다.** 그것이 두려운 거야.

실제 같은 이야기

지하철 2호선 신촌역 근처 원룸, 여름이었다. ‘현수’는 28살, 비교적 가벼운 연애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유진’은 26살, 표현이 많은 여자였다. 유진은 밤마다 현수 옆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현수가 곤히 잠든 새벽 두 시, 유진은 조용히 일어나 욕실에 갔다가 돌아와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다 어느 날, 유진은 현수의 휴대폰에서 ‘오늘 또 울더라, 귀찮아’라는 단톡 메시지를 봤다. 보낸 사람은 현수의 군대 후임이었다. 유진은 그날 밤 현수가 잠든 뒤, 욕실에서 30분 동안 울었다. 그리고 침대로 돌아와 그의 등을, 아주 살짝, 어루만졌다. *이 사람은 나를 구경하고 있구나.* 
다음 날 유진은 현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이만 만나자.” 현수는 눈을 크게 뜨고 “또 왜 그래?”라고 되물었다. 유진은 대답 대신, 그가 지난 밤 어루만졌던 그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그게 전부였다. 그날 이후로 현수는 유진에게 ‘아프다’는 연락을 자주 했다. 유진은 읽지 않았다. 아픈 건 이미 자기였으니까.

2022년 11월, 부산 서면의 한 오피스텔. ‘재영’은 35살, 이혼 2년 차였다. ‘나연’은 31살, 그의 동료였다. 둘은 새벽까지 영화를 보고 있었다. 재영은 처음에는 나연이 울 때마다 품에 안겨 주었다. 그러다 나연이 울음을 멈추자, 재영은 TV 리모컨을 들어 볼륨을 올렸다. 

그날 이후 나연은 더 이상 재영 앞에서 울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잠들기 직전, 재영의 가슴에 귀를 대고 맥박을 들었다. 그것이 떨리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나연은 눈을 감았다. 아침에 나연은 조용히 짐을 싸고 나갔다. 재영은 그녀가 사라진 뒤에야, 텅 빈 침대 옆에서 처음으로 울었다. 그때야 그는 깨달았다. **그는 눈물이 있는 자리에만 연인으로 남고 싶었다는 걸.**

왜 우리는 이것에 끌리는가

정서적 유령화는 본래 우리를 파괴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구경거리**를 좋아할 뿐이다. 관계에서 떠나는 사람은 대부분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너를 구하지 못하면 나도 부서질까 봐”라는 두려움. 그래서 그들은 구경만 한다. 그리고 그 구경은 결국,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가장 고귀한 형태의 권태로 변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눈물 위에서만 자신의 연민을 확인하려 든다. 그게 연애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건 그저, 타인의 붕괴 위에 서 있는 자기애의 섬세한 증거일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곁에 있으면서도 이미 떠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의 고통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우리는 그들에게서 구원을 받지 못한 채, 그들이 떠나면서도 계속해서 떠나지 못하는 거야.

너는 지금 누군가의 눈물 위에 있는가

새벽 세 시, 네가 울고 있는 동안 네 옆에 누가 있는지 돌아봐. 그 사람은 네 눈물 위에 서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너는 누군가의 눈물 위, 차가운 베갯잇 위에서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 눈을 감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 눈물의 주인이, 정말로 너를 사랑하는 사람인지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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