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는 키스를 끝내고 화장실로 들어가면 늘 립스틱을 지웠다. 화려한 레드가 휴지에 찍히며 번지면, 그 아래로 선명한 붉은 발진이 드러났다. 처음엔 도훈의 수염이 길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쉐이버를 들고 거울 앞에 섰다.
"이거 제발 한 번 밀어줘. 내가 오늘 손이 좀 아프거든."
희수가 면도날을 잡는 순간, 도훈이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따끔한 향내를 품은 샤버젤 냄새와 함께, 그의 목덜미에서 올라오던 담배 연기가 섞였다. 희수는 날을 피부에 살짝 대며 말했다.
"너랑 키스하면 입이 간질거려. 진짜로."
도훈은 웃으며 뱃살에 턱을 묻었다.
"알러지냐?"
"몰라.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아."
잠시 후, 희수는 도훈의 볼을 매만지며 면도를 끝냈다. 면도날이 지나간 자리가 새살처럼 매끈했다. 그때 희수는 깨달았다. 도훈의 얼굴을 다듬을수록, 내일 내 입술이 더 긁힐 것이라는 예감이 선명해졌다.
서현은 민재의 원룸에 처음 발을 들인 날, 이불 위에 흩어진 립밤 튜브를 봤다. 민재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며 말했다.
"여기 와서 앉아. 네가 앉으면 나도 앉을게."
침대 발치에 앉은 서현은 민재가 다가오자 고개를 살짝 들었다. 키스는 예상보다 빨랐다. 민재의 아랫입술이 서현의 위입술을 살짝 건드릴 때, 서현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민재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어루만졌다. 손끝이 차가웠다. 서현은 잠시 멈췄다.
"너무 빠르네."
민재는 고개를 돌려 서현의 귀를 간질였다.
"싫어?"
서현은 대답 대신 민재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두 번째 키스는 더 깊어졌다. 서현은 민재의 혀가 자신의 잇몸을 스캔하는 감각에 집중했다. 그때, 혀끝에서 불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이글거렸다. 키스를 끝내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입술이 이미 부풀어 있었다. 서현은 거울 앞에서 립밤을 덧발라도 보지만, 아랫입술 가운데에서 번져 나오던 붉은 기운은 쉬 지워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민재는 서현의 입술을 가리켰다.
"이거 좀 안 맞는 것 같은데?"
민재는 화장대 서랍에서 연고를 꺼냈다. 연고를 바르며 말했다.
"우리가 계속 만날수록 너는 계속 긁힐 거야. 그래도 괜찮아?"
서현은 민재의 손목을 잡았다. 손목에서 희미하게 올라오던 시계 자국이 서현의 손끝에 닿았다. 서현은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민재의 알레르기 실험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서현은 민재의 입술을 다시 떠올렸다. 붉게 부풀어 오르는 자신의 입술, 그리고 그 위로 미소 짓는 민재의 얼굴.
희수와 도훈은 한 달 만에 다시 만났다. 도훈은 희수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이번엔 립스틱 안 바르고 온 거지?"
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훈은 희수의 아랫입술을 살짝 건드렸다. 희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도훈의 입술이 희수의 입술을 덮쳤다. 키스는 길었다. 희수는 도훈의 혀가 자신의 혀를 감쌌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키스를 끝내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이번엔 입술이 더 붉게 부풀어 있었다. 희수는 거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녀는 도훈의 눈을 떠올렸다. 그 눈빛 속에서, 희수는 자신의 붉은 입술을 비추는 도훈의 얼굴을 보았다.
입술이 부풀어 오르는 고통은, 내가 이 관계에 얼마나 깊숙이 잠겼는지를 증명해주는 지문이 되었다. 알레르기 반응은 신체가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 메커니즘이지만, 동시에 상대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나는 나를 해치는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입술이 부풀어 오르면서도, 나는 그 붉은 기운 속에서 나를 반사하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서현과 민재는 헤어진 뒤에도, 희수와 도훈이 ‘우리는 좀 쉬자’고 합의한 뒤에도, 같은 질문을 떠올렸다. 우리가 계속 긁히면서도 왜 서로를 놓지 못했을까. 답은 단순했다. 그 반응은 상대를 향한 게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해치는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입술이 부풀어 오르면서도, 나는 그 붉은 기운 속에서 나를 반사하는 그림자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