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10년째 똑같은 자세, 똑같은 소리… 이대로 죽을까 봐 무서워요

매주 목요일 11시 47분, 남편의 손이 발목을 더듬는 순간 김민수는 미래를 똑같이 반복하는 공포에 떤다. 결혼 10년 차의 익숙한 몸짓이 만들어낸 가장 섹시한 공포, 그리고 변화 없는 욕망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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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밤 11시 47분, 침대 위에서

민수는 시계를 힐끗 본다. 13분 뒤면 남편이 샤워를 마치고 침실로 들어온다. 똑같은 순서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침대 옆을 지나가고, 스탠드 불빛을 약하게 하고, 이불을 차며 몸을 기대고, 그리고 허벅지를 쓸며 말한다.

  • 오늘도 졸려?

믿기 힘들겠지만 이 한 마디가 10년째 반복된다. 민수는 눈을 감고 숨을 죽인다. 오늘만큼은 다르게. 하지만 남편의 손은 언제나처럼 발목을 잡고 천천히 위로 올라온다. 같은 톤, 같은 틈새, 같은 리듬. 혀끝이 굳는 순간, 민수는 문득 상상한다. 30년 뒤 이 모습이. 50년 뒤 이 모습이. 관 속에서도 이 손짓이 계속될 것 같은 기분이다.


속삭이는 유령들

'평생 똑같은 섹스'는 두려움의 이름이 아니라, 포기의 얼굴이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지루함'이 아니라 '변화 없음이 영원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이다. 민수의 몸은 이미 반응하지 않는다. 아니, 반응해서 더 슬프다. 10년 전처럼 젖꼭지가 단단해지고, 엉덩이가 저절로 들리지만 민수는 이 모든 반응이 예측 가능하다는 사실을 안다. 남편도 안다. 그래서 그는 민수가 기절초풍할 자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가 거기만 더듬는다.

이건 뭐지, 공장의 품질 검수 같은 건가.


수진과 재현, 혹은 당신과 나

수진은 오피스텔 전세로 살던 시절을 떠올린다. 남자친구 재현과 2년째 접어들던 겨울밤, 그는 갑자기 책상 위에 민수를 올려놓았다. 키보드가 떨어지고 모니터가 흔들렸다. 수진은 본 적 없는 각도에서 재현을 보았다. 천장이 돌았고,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일주일에 두 번씩 책상 위에서 눈을 맞추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재현이 말했다.

  • 우리 이제 침대에서 해볼래? 허리 아프다.

수진은 얼음장처럼 굳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구나. 평생 똑같은 자세에 평생 똑같은 리듬. 그날 밤 수진은 재현이 잠든 뒤 화장실에서 울었다. 왜 난 항상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야 하지?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새로운 남자들의 DM이 쌓여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누구 하나만 만나면 되는 거다. 그럼 또 2년 뒤에는 똑같은 꿈을 꿀 테지만.


미유와 테츠야, 누구도 모르는 밤

미라클모닝을 한다는 테츠야는 아침 5시에 미유를 깨운다.

  • 일어나, 오늘은 베란다에서 해보자.

미유는 눈을 비비며 웃었다. 어제는 부엌이었고, 그제는 현관이었다. 결혼 7년 차인데도 이 둘은 주 3회씩 장소를 바꾼다. 하지만 미유는 알고 있다. 7년 동안 그들의 체위는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미션ary. 항상 미션ary. 테츠야는 눈을 감고 미유의 가슴을 만지는데, 미유는 그 손끝에 2,555번째 똑같은 리듬이 느껴진다.

그래도 미유는 속으로 단호하게 말한다. 장소만 바뀌어도 된 거야. 체위는 둘째 치지. 그러나 어두운 베란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미유는 문득 생각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단순한 지루함이 아니라, 변화 없는 나 자신이겠지. 그녀는 테츠야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중얼거린다.

  • 오늘은... 눈 감고 해볼래?

왜 우리는 이 지옥에 끌리는가

변화가 없다는 확신은, 죽음의 예행연습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미래를 상상하면서도 그 미래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동물이다. 그래서 더 잔인하다. 우리는 미래의 섹스를 상상한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손길, 똑같은 신음. 이 상상은 기이할 정도로 선명하다. 민수는 70세가 된 남편의 주름진 손이 다리를 더듬는 장면을 생생하게 본다. 그리고 그 장면 속 자신의 몸은 이미 반응하지 않고 있다.

이 두려움은 남편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 대한 공포다. 민수는 남편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변화를 금지하는 봉인처럼 느껴질 때, 그녀는 자신의 욕망이 부정당한다고 느낀다. 이건 배신이야. 하지만 정작 배신의 대상은 남편이 아니라, 10년 뒤의 자신이다.


마지막 질문

민수는 오늘도 시계를 본다. 11시 48분. 남편이 곧 온다. 그녀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난다. 변화를 원하는 건가, 변화를 두려워하는 건가. 아니면 변화하지 못할 미래를 사랑하는 건가. 그녀는 침대 옆 스탠드를 꺼버린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로 새로운 섹스를 원하는 게 맞니, 아니면 똑같은 섹스 속에서 새로운 너를 찾고 싶은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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