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오늘 밤도 그가 달려든다, 나는 식탁 위 김치 국물 한 방울이 침대 시트에 떨어질까 두려워진다

발효 냄새처럼 배어든 금기와 욕망. 8년 차 부부의 침대 위에서 사라진 열정과 남은 미안함을 김치 국물 한 방울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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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도 그가 달려든다, 나는 식탁 위 김치 국물 한 방울이 침대 시트에 떨어질까 두려워진다

밤 11시 47분.

거실 불이 꺼질 때마다 그림자가 한 뼘씩 고개를 내밀고, 싱크대 위 김치통 뚜껑 사이로 새어 나온 발효 냄새가 침실 문턱까지 살얼음판을 만든다. 콰직— 뚜껑이 닫히는 소리마저 질척이고 젖어 있다.

그가 다가온다. 짧은 팬티만 걸친 몸이 내 뒤에 붙는 찰나, 나는 식탁 위 국물 한 방울을 바라본다. 김치가 품은 붉은 기름, 잠시 떠 있던 채소 조각, 그리고 이 방울이 침대 시트에 떨어지면—그 꿈같은 참혹함이 두려워진다.

“하루만 편히 자고 싶어.”
“또 그래? 일주일째야.”

물을 틀었다. 행주를 꼭 쥐었다가 물기를 짜내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오늘만, 진짜 오늘만.

그는 아무 대꾸 없이 몸을 돌린다. 스마트폰 불빛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며 잠금 화면이 열릴 때마다 하얀 벽이 두 번 깜박인다. 나는 냉장고에 김치를 밀어 넣으며 어깨를 으쓱인다—미안함과 안도가 한꺼번에 올라온다.


결혼 8년 차, 우리 침대는 늘 따뜻했다. 단지 내가 차가워진 것뿐.

화장실 거울 앞. 속눈썹을 한 올씩 뽑으며 34세를 응시한다. 누가 봐도 젊다는데, 몸은 까만 밤 끝자락처럼 무게감만 남긴다. 손끝이 닿는 순간 ‘오늘도 이 과정을 거쳐야 하나’라는 피로감이 먼저 밀려든다. 사랑은 하는데, 닿고 싶지 않다.

“그때의 나는 불이었다.”

신혼 초, 그를 깨워 새벽 3시 키스를 하던 때가 떠오른다. 익숙한 행위가 되풀이될수록 낯선 감정이 선명해진다. 내 몸은 이미 거기까지인데, 그의 몸은 아직 출발점에 서 있다.


대전의 여름, 술잔이 맥박을 친다.

“우리는 매일 하잖아.” 수진이 한 모근을 기울이며 속삭인다. “근데 나는 일주일에 한 번도 힘들어.”

그녀는 잠시 숨을 멈췄다가 무게를 낮춘다. “그러다 아침에 눈 떠보니 옆에 있던 사람이… 후배더라고.”

나는 그때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안다. 단순히 ‘몸이 먼저 갔다’는 것뿐이었다. 몸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


미영의 일기장 ― 결혼 6년 차, 욕망 소실 일기

12월 3일
준호가 또 원했다. 끝나고 나니 짜증이 났다. 뭘 원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1월 8일
준호가 물었다. ‘네가 먼저 안 하던데, 남편으로서 이상한 거 아냐?’ 나는 대답을 피했다.

2월 14일
발렌타인이었는데도 키스는 없었다. 준호는 살짝 화난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3월 15일
민석이 손목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 선배, 오늘 정말 예뻐요. 밥을 먹고 헤어지는 길, 그의 손등이 내 손등을 스쳤다. 3초간 떨렸다. 6년 만에 처음 느낀 전류였다. 그날 밥값은 준호에게 거짓말로 물었다. 민석과의 키스는 47초였지만, 그녀의 몸은 오랜만에 기억을 떠올렸다. 스스로가 낯설어서 두려웠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샴푸. 똑같은 양치컵. 그 안락함이 섹스의 적이 되는 순간, 욕망은 숨는다. 그가 어떤 부위를 먼저 만질지, 어떤 숨소리를 낼지, 얼마나 걸릴지까지—침묵 속에서도 대본은 이미 짜여 있다.


거절할 때마다 나는 두 가지 죄책감을 품는다.

  • 남편에게
  • 나 자신에게

사회는 좋은 아내는 남편의 욕망을 받아들인다는 잔재를 품고 있어서, 거절은 반역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이 쿵쿵대고 일어난다—‘내가 정말 이상한 걸까? 다른 부부도 이렇게 될까?’

두 죄책감이 서로를 갉아먹는다. 남편에게 미안하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미안하다. 그 미안함이 반복될수록 침실은 점점 좁아진다.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사랑의 부재가 아니라, 욕망의 지루함이다.


오늘 밤도 그가 다가온다면, 나는 어떤 말을 꺼낼까.

혹시 그 대답 속에는 정말로 나의 욕망이 들어 있을까, 아니면 피로감과 죄책감의 잿빛 혼합물일까. 침대 머리맡에서 불빛 하나를 남겨 둔 채, 나는 조용히 몸을 움켜쥔다.

당신의 몸은 지금, 정말로 누구의 손길을 원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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