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남편이 유산을 농담으로 흘린 순간, 나는 왜 침을 삼켰는가

서재 한복판, 남편이 던진 한마디. 그 농담 속에선 우리 부부가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욕망이 살아 숨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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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유산을 농담으로 흘린 순간, 나는 왜 침을 삼켰는가

“당신이 먼저 죽으면 좋겠어.”

서재에 앉아 와인 한 모금을 마시던 지후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투명한 잔 속에서 붉은 물결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정말 오랜만에, 우리가 아니라 남의 얘기처럼 들린 대사였다.

*‘농담이겠지.’*
*이건 농담이어야 해.*

그러나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한 채 나는 침을 삼켰다. 뜨거운 목끝으로 내려가는 것이 와인이 아니라, 온몸을 타고 흐르는 어떤 불길한 기대감이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숨겨진 계산의 맛

유산이라는 단어는 결혼 생활에선 마치 잠재운 향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무게를 품고 돈다. 그것을 입에 올리는 순간, 부부 사이에선 아주 날카로운 침묵이 찾아든다.

지후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농담으로 둘러쌌다. 그러나 둘러싼 띠를 벗겨내면, 광활한 대지처럼 펼쳐지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속삭임이다.

> ‘네가 먼저 죽으면 나는 그 돈을 어떻게 쓸까?’
> ‘그럼 내가 더 오래 살면, 그 돈은 결국 내 것이겠지?’

우리는 모두 계산하고 있었다. 단지 그 계산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천으로 덮어둔 채, 눈치만 살폈던 것이다.


집 안에 살아 있는 유령

사실 말이다. 나는 민서라는 친구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민서는 작년에 남편 민혁이 갑자기 한 말에 발가락이라도 잘릴 듯 홀린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침대 끝에 앉아 이불을 접으며 말했다.
아, 너도 알잖아. 내가 너보다 7살 많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먼저 죽으면, 그 집 그냥 네 거야.
너도 그만큼 편해지겠네?

민서는 잠시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편해지면 좋겠다, 했다. 단어는 새의 발자국처럼 가늘게 침대 위에 남았다. 그날 이후, 집 안에서 유령 하나가 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민혁이 잠든 새벽 3시마다, 부동산 어플을 들여다보며 ‘그때는 어떤 식으로 집을 꾸밀까’ 상상했다.


또 다른 사례. 준호는 직장 동료다. 그는 아내 혜원이 은행에서 돌아오며 한 말을 지금도 생생히 떠올린다.

혜원이 현관 신발장에 열쇠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우리가 받는 게 18억이라던데?
그럼 나도 운전면허 따서 전기차 하나 장만해야겠다.

준호는 그때 아내의 눈빛에서 어떤 빛을 봤다. 마치 돈이 지폐처럼 흩날리는 환영을 본 사람처럼. 그 빛이 순수한 기쁨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남편보다 두 배는 뜨거운, 탐욕이 숨겨져 있었다.


금기를 움켜쥔 손

왜 우리는 유산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가. 그건 단순한 돈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이 선물하는 자유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끊임없이 ‘우리’라는 단수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유산은 그 환상을 깨뜨리는 도끼다. ‘내 것’과 ‘네 것’이 명확히 나뉘는 순간, 우리는 다시 ‘나’와 ‘너’로 돌아간다.

> ‘당신이 먼저 죽으면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 ‘그 삶은 지금보다 더 자유로울까, 더 공허할까?’

그래서 우리는 농담으로 돌린다. 웃으며 말하지만, 그 웃음 뒤편에는 상처 난 아이처럼 숨어 지내는 욕망이 있다.


마지막 잔

밤이 깊어가자, 지후는 잠이 들었다. 나는 그의 숨소리를 들으며 다시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이번엔 단맛이 아니라, 무언가 시큼한 금기의 맛이 났다.

유산이란 결국 우리가 서로에 대한 사랑과 ‘내가 너 없이도 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 사이를 오가는 다리다. 그리고 그 다리 위에서 우리는 언제나 한 발을 떼고 있다.

그래,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 질문은 단 하나다.

> 당신이 내게서 사라진다는 상상을 지금 이 순간에도 은밀히 즐기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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