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메시지는 내가 보냈어."
지은은 톡방을 꾹 눌렀다. 읽씹 45시간. 초록색 원이 심장처럼 울렸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손가락은 또 주소록을 올렸다가 내렸다. 전화 버튼 위에서 춤을 춘다.
누가 먼저 물어 볼까.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이건 목에 걸린 낙타의 뼈다. 누가 먼저 삼키느냐에 따라 사막이 끝난다.
침묵의 시계
43시간 17분째 숨을 죽이고 있다. 톡 하나만 보내면 해결될 일인데, 왜 이렇게 목이 메는 걸까.
그래. 바로 이것 때문이다. '내가 먼저' 하는 순간 지는 거다. 권력이 넘어가는 순간이다.
나는 당신이 나를 원하는지를 시험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나를 그만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받고 싶은 걸까.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건 내기판에 앉아있다. 누가 먼저 '보고 싶어' 한 마디만 해도 상대는 높아진다. 반대편은 늪에 발이 묶인다. 그래서 입을 다문다. 입술이 찢어질 듯 굳어도 죽어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연락하지 않기 연습
소연은 8년 전 남자친구와 이별 후 지금껏 그게 무엇인지를 연구해왔다.
"우리가 헤어진 건 단숨에 아니었어. 한 달간 서로의 텍스트를 놓고 러시안 룰렛을 했죠."
- 1일 차: 그가 출근 인사 대신 이모티콘 하나 보냈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긴 줄 알았다.
- 3일 차: 오후 3시, ‘점심 뭐 먹었어?’가 왔다. 4시간 뒤에 봤다고 대답했다. 다시 2일 무전.
- 13일 차: 새벽 두 시, 그가 ‘보고 싶다’라고 왔다. 손가락이 떨렸다. 하지만.
나는 아침 6시에 ‘나도’ 라고 보냈다. 나도. 당연한 말이었는데 그날로 끝났다.
"그때 알았어요. 내가 먼저 ‘보고 싶다’를 말했다면 우린 살았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항복이었죠."
권력의 온도 차
현수와 예린은 누가 먼저 안부를 묻느냐에 따라 키스의 온도가 달라졌다.
현수: "내가 먼저 연락하면 다음날 키스는 느슨해져요. 입맞춤이 아니라 관용 같아."
예린: "내가 먼저 문자하면 그날 밤 섹스는 차가워. 나를 원하는 게 아니라 용서하는 느낌이니까."
침묵이 길수록 욕망의 화력은 강해졌다.
현수는 5일 만에 견디지 못하고 예린의 집 현관에 서 있었다.
예린은 문 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발로 밀었다. 안에는 핑크색 락스미 더미가 들어 있었다.
이제는 누가 먼저 씻으냐의 싸움이야.
세 시간 뒤 현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던졌다. 유리 너머로 예린의 눈이 번쩍였다.
"봤죠? 내가 먼저 잘못했대도 당신이 먼저 목욕했잖아."
그날 이후로 둘은 정확히 72시간마다 번갈아 연락했다. 규칙이었다. 지키지 않으면 다시 침묵의 시험대에 선다.
왜 우리는 이 끔찍한 게임에 끌리는가
심리학자들은 불확실성 중독이라 부른다. 당신이 내게서 얼마나 도망칠지 모르는 긴장감이 최고의 마약이다.
혹시 나를 버릴지도 몰라 하는 두려움이 또 나를 선택해줄지도 몰라 라는 희망으로 뒤바뀐다.
우리는 어릴 적 숨바꼭질에서 배웠다. 찾아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곧 설렘이다.
연락하지 않는 시간이 길수록 상대의 빈자리가 커진다. 그 크기가 곧 내가 상대에게 차지하는 비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의로 침묵한다. 당신이 없는 나를 보여줘 라는 잔인한 요청.
그리고 그 빈자리가 너무 크면, 결국 우리는 서로가 아닌 빈자리를 사랑하게 된다.
마지막 질문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마지막 메시지는 34시간 전이다.
화면을 켤 때마다 푸른 불빛이 얼굴을 지운다.
괜찮아, 이번엔 내가 먼저 쓰지 않을 거야.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렇게 속삭인다.
만약 그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끝난 거겠지.
그래서 나는 묻는다.
지금 당장 톡방을 열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에게
‘보고 싶다’ 한 마디 적는다면, 그건 패배인가 구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