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는 나를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3일째 온라인 상태예요

매치는 떴지만 대답은 없는 그. 우리는 왜 스르륵 증발하는 연애의 유령에 홀려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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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아하니?"

화요일 새벽 2시 17분. 혜진은 침대에 누워 카톡 1:1 채팅방을 켰다. 상대방 이름은 '준수(31)·마케터·184cm'. 프로필 사진에서는 살짝 내민 입술이 유난히 붉었다. 방금 전까지 뜨거웠던 대화는 어느새 식었다.

혜진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위로 밀어 올렸다. 124개의 메시지. 그러나 마지막 발신자는 언제나 혜진이었다. 3일째 읽씹이다. 그래도 내일… 내일 본다고 했는데.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

왜 우리는 미닫이문처럼 열렸다 닫히는 관계에 환장할까. 전문가들은 말한다. ‘불확실성이 보상 회로를 자극한다’고. 하지만 그 설명은 너무 차갑다.

진짜 이유는 더 음습하다. 우리는 상대가 사라질 때 비로소 그를 온전히 소유하는 착각에 빠진다. 스크린 너머 잔상이 머물러 있는 한, 그는 나의 상상 속에서 완벽하게 변주된다. 멍든 것은 내 마음이지만, 동시에 나는 무한한 가능성의 주인이 된다.


준수, 그리고 재훈

첫 번째 유령

준수는 사라지기 하루 전 밤, 혜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랑 있으면 숨통이 트여 진짜 오랜만에 누군가를 이렇게 궁금해했어

혜진은 화면에 오른쪽 뺨을 살짝 붙였다. 그날도 준수는 새벽 3시 14분에 ‘읽음’ 처리를 해놓고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혜진은 알고 있었다. 준수는 아직 온라인 상태를 숨기지 않았다는 걸. 그 초록점 하나가 혜진의 밤을 지배했다.

두 번째 유령

재훈은 슬랙 대신 잔디로 연락했다. 디자이너라 자기소개를 하며 보낸 첫 DM은 단 두 줄이었다.

토요일 새벽 4시 12분
[이미지: 그림자만 남은 빈 다리]

혜진은 사진을 확대했다. 회색 톤의 흐릿한 실루엣. 재훈은 단 한 번도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래도 혜진은 매일 밤 12시가 되면 잔디를 켰다. 재훈은 항상 2분 뒤에 ‘접속 중’이라 떴다가 5분 만에 사라졌다. 마치 부르는 듯, 대답 없는 부름이었다.


유령이 남기는 화학 흔적

심리학자 아담 앨터는 말했다. ‘부재의 효과’는 실제 사랑보다 오래 지속된다고. 우리는 결여된 것에게서 더 강렬한 자극을 받는다. 이는 도파민이 불확실성 앞에서 더 격렬하게 분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설명도 역시 피상적이다. 진짜 공포는 따로 있다.

내가 상대를 유령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혜진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혜진 역시 누군가에게는 유령이었을지도 모른다. ‘읽씹’보다 더 잔인한 방식으로. 그녀 역시 초록점을 끄고, 이름 뒤에 ‘~ing’를 붙이지 않는 연기를 했을 테니까.


그림자 연애의 미학

앱 속 대화는 늘 이렇게 끝난다.

먼저 관심을 표현한 사람이 가장 먼저 잠수를 탄다. 스르륵, 녹아내리듯. 우리는 모두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괜찮아, 나도 그만큼 진지하지 않았어.’ 그렇게 상처는 두 배로 되돌아온다.

그래서일까. 혜진은 요즘 ‘온라인’ 표시를 끄고 지낸다. 대신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마지막 접속 시각’만 훔쳐본다. 유령은 보이지 않지만, 그 발자국을 볼 수 있으니까.


마지막 질문

혜진은 오늘도 새벽 3시 27분에 잠에서 깼다. 전날 밤, 재훈이 보낸 새로운 사진. 이번엔 빈 의자였다. 혜진은 화면을 껐다가 다시 켰다. 아직도 ‘안 읽음’ 표시다.

진짜로 사라진 걸까. 아니면 나만 사라진 걸까.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아주 조용히, 아주 오래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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