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먼저 배를 뱃겼다
"아니, 진짜 너무 커졌지?" 영석이 티셔츠를 걷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배를 잡아당겼다. 임신 7개월의 나보다 더 볼록한 아치가 툭 튀어나왔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도 아빠 품격 나오려나? 아가한테 배워 미리 연습 중이야.
나는 웃어야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어쩌자고 같은 말을 해. 그가 손으로 배를 쓰다듬을 때 흔들리는 살결. 셔츠 밑으로 드러난 복부의 깊은 주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상상했다.
배신의 냄새가 스멀스멀
만약. 지금, 이 순간.
그의 배는 뱃속 아이의 형태를 닮았다. 하지만 그건 생명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맥주와 야식이 쌓인 덩어리였다. 내 배는 단단하고 예민했다. 그의 배는 무르고 느슨했다. 그 차이가 왜 이토록 선명하게 느껴졓을까.
나는 그의 배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맞아, 우리 아기랑 비슷하네."
그는 뿌듯해했다. 나는 속으로는 반대의 감정을 키우고 있었다. 나는, 나는 변화를 겪고 있는데. 나는 매일 눈에 띄게 몸이 달라지는데. 왜 그는 나를 따라오는 척만 하는가.
네가 아팠던 건, 네가 변화하는 동안 그는 그대로였다는 사실이야.
현실과 환상 사이, 수진의 이야기
수진은 지난 주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녀도 결혼 3년차, 임신 6개월.
"남편이 난데없이 다이어트 한다고 하더라고." 수진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근데 진짜 이상한 게, 그가 살 빼는 동안 내가 더 뚱뚱해지는 느낌이야. 내가 임신한 게 아니라, 그가 나를 대신해서 살 찌는 거처럼."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속삭였다.
"어젯밤에... 남편이 잠든 사이에. 나 스스로를 상상했어. 아직 아기 없는, 날씬한 내 몸. 그리고... 다른 사람." 수진은 고개를 숙였다. "상상이었어. 근데 그 상상이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어."
은밀한 반전, 정우와 혜진
정우는 혜진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혜진은 그에게서 첫눈에 반했던 날씬한 실루엣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결혼 2년 만에 그의 배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너도 이젠 아빠다운 몸이구나." 혜진이 농담 섞어 말했다. 정우는 웃었다. 하지만 혜진은 잠든 그의 배를 만지며 상상했다. 만약, 내가 이 배를 눌렀다면. 그의 배는 푹 꺼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무언가가 나올지도.
다음 날, 혜진은 헬스장에 갔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정우 그대로 둔 채, 나만 남겨두는 선택을 떠올렸다. 임신이라는 변화를 혼자 겪는 동안, 그는 그대로였다. 그 차이가 만들어낸 은밀한 분노.
금기의 환상, 왜 우리는 사로잡히는가
우리는 변화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을 보았다.
결혼 3년차, 임신이라는 극적인 변화 앞에서. 남편의 몸은 그대로인데, 나는 날마다 달라진다. 그 차이가 만들어낸 욕망의 틈. 그는 나를 따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대신해서, 나 대신에, 즐길 누군가를 상상한다.
이것은 단순한 배신이 아니다. 이것은 내 몸이 만들어낸 새로운 지도 위에서,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이 남겨진 공백을 채우려는 인간의 가장 은밀한 욕망이다.
너는 지금, 누구의 몸을 상상하고 있니
너의 배는 부풀어 있거나, 혹은 아직 아니거나. 하지만 네가 상상하는 그 몸은 누구의 것인가. 변화하지 않는 그의 몸을 보며, 너는 무엇을 느끼는가. 그리고 그 욕망의 끝에, 너는 누구를 상상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