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문을 닫는 순간
"밤새 문자할까?" 지혁이 넥타이를 고르며 물었다. 진한 차콜색 넥타이. 나는 그게 누가 골랐는지 알고 있다. 두 달 전 그녀가 인스타 스토리에 올린 남자 선물. 나는 그걸 스크린샷해 숨겨놨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이상했다. 유리문이 아니라 뼈가 부러지는 소리처럼 날카로웠다. 거실 조명이 시끄럽게 빛난다. 아기는 뒤척이는 소리를 냈고, 나는 그 즉시 불을 껐다. 어둠 속에서 나는 손가락으로 계산했다. 맥주 두 캔, 22시 14분, 그녀와의 첫 데이트 1시간 46분 남았다.
우리가 몰래 원하는 것
왜 우리는 상처를 갈구하는가.
나는 이 상황을 만들었다. 지혁에게 "니가 하고 싶은 거 해봐"라고 말한 사람은 나였다. 나는 그가 누군가와 스킨십하기 전에, 나를 향해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 미안함이 곧 사랑일 거라고 속삭였다.
이건 단순한 질투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을 관람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선택한 고통. 내가 통제하는 파국. 그래서 더 치명적이다.
내가 주문한 디저트인데 왜 이렇게 쓰냐.
혜진씨는 서러워서 계속 설거지했다
혜진, 36세, 두 아이 엄마. 남편은 한 달 전 첫 외도를 고백했다. 그녀는 "괜찮아, 너도 인간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리곤 그에게 프리패스를 줬다. 단, 늘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으로.
첫날 밤, 그녀는 싱크대에서 설거지를 3시간 했다. 처음으로 남편이 다른 여자와 잠들지 않는 밤이었다. 수저가 쟁반에 부딪히는 소리마다, 그녀는 생각했다. 지금 그는 그녀의 허리를 만지고 있을까.
도대체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저녁 11시 32분, 남편이 카톡을 보냈다. "이따 들어갈게, 사랑해". 그녀는 문득 싱크대 밑으로 주저앉아 울었다. 그녀의 울음은 물소리에 묻혀 아이들에게 들리지 않았다.
수아는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수아, 29세, 결혼 3년 차. 그녀는 남편의 첫 데이트를 함께 준비했다. 옷차림, 향수, 콘돔까지. 남편이 집을 나서자마자, 수아는 침대에 누워 클리토리스를 만졌다.
그녀는 상상했다. 남편이 처음으로 새로운 입술을 맞추는 순간. 그리고 그녀는 더 흥분했다.
"나는 미친 것 같아요," 수아는 나에게 속삭였다. "근데 남편이 다른 사람과 잤다는 게, 우리 부부를 더 불타게 하더라고요."
그녀는 남편이 돌아오면 냄새를 맡는다. 그리고 그 냄새가 섹스를 부른다. 이건 열린 결혼이 아니라, 열렬한 결혼이다.
금기를 향한 나비
왜 우리는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상처를 직접 주문하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카타르시스적 경험이라 부른다.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공포를 미리 연출함으로써, 그 공포를 길들이려 한다. 내 남편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래서 나는 그 떠남을 감독한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상처 받은 깊이를 확인하는 일이다. 아, 정말 사랑했구나. 피가 나야 깊이를 안다. 아픈 만큼 사랑했다는 증거를 원하는 것이다.
질투는 사랑의 지문이다.
아직도 넥타이를 벗지 않았다
지혁은 새벽 2시 47분에 돌아왔다. 나는 아직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넥타이를 벗지 않았다. 향기가 다르다. 샴페인과 그녀의 목 뒤 냄새가 섞여 있다.
"잘했어?" 나는 물었다.
지혁은 침을 삼켰다. "...응."
나는 그 한 음절 속에서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된 걸 깨달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더 사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행복한 건가, 아니면 파국을 기다리는 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남편의 데이트를 기다린다. 누군가는 싱크대를, 누군가는 침대를, 누군가는 문 앞을 맴돈다. 그리고 모두가 같은 질문을 한다.
내가 만든 이 고통 속에서, 과연 나는 어떤 기쁨을 발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