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집 앞에선 남편, 옆집에선 연인 — 2년째 문 앞만 지킨 여자의 은밀한 계산

문 앞에만 서는 남편과 집 안에서 벌어지는 나른한 금기. 그녀는 왜 여전히 열쇠를 돌리지 않는가.

문턱의 남편은밀한 계산기혼 금기배신의 미학

"벨 누르지 마, 오늘도 잠깐만" 영주는 현관 앞에 서 있는 지환의 얼굴을 슬it하게 내려다본다. 지환은 손에 든 장바구니를 슬며시 내민다. 김치 두 포기, 냉동삼겹살 한 팩, 그리고 영주가 좋아한다며 한 달 전에도 줬던 초콜릿 세 개.

그는 두 해째 같은 자리에 선다. 문섶 바로 앞, 신발장과 발판 사이 좁은 공간. 그 틈을 넘어선 적이 없다. 영주는 신발장 위에 놓인 남편의 실내화를 본다. 먼지가 수북. 24개월째 문 앞에만 서는 남편, 그리고 24개월째 집 안에서 다른 남자의 손을 잡는 아내.


먼지 쌓인 신발 위로 떨어지는 침묵

'가지 마'라고 말한 적 없는데, 그는 결코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영주는 지환이 가져다준 장바구니를 받아 든다. 무게가 익숙하다. 두 해 전만 해도 지환은 현관문조차 열지 않았다. 아내의 집이 아닌 '그 여자의 집'이라며 발길을 끊었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현관 앞까지 왔다. 그리고 그곳에 멈췄다.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부부가 될 텐데,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남남이 될 텐데. 그는 그 틈바구니를 선택했다.

영주 역시 그 틈을 정교하게 유지했다.

"들어와서 차라도?" 라고 한 번도 권유하지 않았다. 대신 현관문을 살짝 열어 손만 내밀어 장바구니를 받았다. 손등이 살짝 스칠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졌지만, 표정은 차갑게 굳혔다.

그녀는 지환이 가져다준 삼겹살로 저녁을 한다. 옆집 형민이 좋아하는 양념게장도 담그고. 형민은 집주인의 사위다. 아내가 해외 출장 간 사이, 빈집을 지키며 영주의 집 수리를 돕겠다고 나섰다. 첫날은 전등 갈이였고, 둘째 날은 싱크대 수전 교체였다. 셋째 날은 영주가 먼저 다가갔다.

"저희 집 냄새 나요?" 영주가 웃으며 물었다. 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와 고기, 그리고 은밀한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배신의 온도계

왜 나는 이 틈바구니를 선택했을까. 남편도, 연인도 아닌 이 불온한 안식처.

영주는 매주 토요일마다 지환이 가져다주는 물건들을 정리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면 김치는 두 포기인데, 형민이 먹어 치우는 김치는 한 포기다. 남는 한 포기는 무엇을 위한 걸까. 아니, 누구를 위한 걸까.

그녀는 계산한다. 지환이 준 돈으로 관리비를 내고, 형민과 와인을 마신다. 지환이 준 김치로 형민과 밥을 먹는다. 지환은 돈을 내고, 형민은 몸을 준다. 그리고 영주는 두 남자 사이에 서 있다. 문 앞의 남편과 침대 위의 남자.

"당신은 어떤 위안을 얻고 있나요?" 영주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대답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그녀는 단지 두 남자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서 있다. 지환의 눈에서는 '아내'로, 형민의 눈에서는 '연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눈에는 둘 다 아니다. 그녀는 남편의 신발 위 쌓인 먼지를 본다. 그리고 형민의 목덜미에 남은 자신의 입술 자국을 본다.


실화처럼 쓰인 두 명의 사연

사연 1. 미진, 34세, 서울 마포구

미진은 남편의 실직 이후로 집 앞에만 선다. 남편은 회사를 그만둔 뒤, 매일 밤 11시에 집 앞에 나타난다. "배달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피자 한 판을 내민다. 미진은 피자를 받아 들고 문을 닫는다. 안에서는 28세 하숙생이 기다린다. 하숙생은 피자를 먹으며 "오빠는 또 왔어?" 물었다. 미진은 고개를 끄덕인다. 남편은 피자값을 내고, 하숙생은 몸을 준다. 미진은 그 사이에 서 있다.

한 달 전, 남편은 미진에게 말했다. "나는 네가 필요 없어. 네가 사는 집이 필요한 거야." 미진은 그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그는 집 밖에만 선다. 그리고 미진도 집 안에만 머문다. 두 사람 사이엔 문 한 장이 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사연 2. 수진, 39세, 부산 해운대구

수진은 남편이 사업 실패로 도망간 뒤, 매일 저녁 7시에 현관 앞에 선다. 남편은 잠적했지만, 수진은 그를 기다린다. 그녀는 문 앞에 남편의 사진을 붙여놓고, 그 사진 앞에 매일 저녁을 차린다. 김치찌개, 계란말이, 두부조림. 그녀는 혼자 먹고, 사진을 바라본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남자가 다가왔다. "매일 저녁 혼자 드시네요." 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옆집 남자는 매일 저녁 함께 먹었다. 남편 사진 앞에서. 수진은 옆집 남자와 잠도 잤다. 그리고 아침이면 남편 사진을 내리고, 저녁이 되면 다시 붙였다.


우리는 왜 문 앞에 서는가

문 앞은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곳이다.

문 앞에 서는 남편들은 단순히 집 안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제도를 원한다. 아내는 있되, 책임은 없고. 돈은 내되, 사랑은 없고. 그래서 그들은 문 앞에 선다. 한 발짝만 들어가면 남편이 되고, 한 발짝만 나가면 남이 된다. 그 틈바구니가 그들의 안식처다.

그리고 문 안에 있는 아내들도 똑같다. 남편은 있되, 정은 없고. 연인은 있되, 미래는 없다. 그들 역시 안과 밖의 틈바구니를 원한다. 그래서 아무도 문을 열지 않는다. 열려면 한쪽이 선택해야 하는데, 그 선택이 두렵다.

심리학자 윤혜진은 말한다. "이들은 '은둔적 다중관계'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한다. 실제로는 누구와도 깊이 연결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누구와도 연결된 척 한다. 문 앞에 선 남편, 그리고 문 안에서 다른 남자를 품는 아내. 둘 다 결국엔 고독하다."


마지막 문 앞의 질문

영주는 오늘도 문 앞에 선 지환을 본다. 그가 가져다준 삼겹살은 어김없이 두 덩어리다. 하나는 형민이 먹을 것이고, 하나는 냉동실에 얼려둘 것이다. 그녀는 문을 열까 말까 잠시 망설인다. 열면 남편이 되고, 닫으면 남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문을 살짝 열어 손만 내민다. 지환은 장바구니를 건넨다. 두 사람의 손이 살짝 닿는다.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당신이라면 이 문을 열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닫을 것인가. 아니면 정확히 이 틈바구니를 영원히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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