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가 침대 끝에서 애기 얘기 꺼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의 눈을 피했다

새벽 침대에서 요거트 한 숟가락으로 시작된 ‘우리 아기’ 약속. 남펵의 간절한 눈빛 뒤에 숨겨진 소유욕과 나를 삼킬 환상의 실체를 마주하다.

임신공포부부욕망육체적계약모성기대

침대 끝에 앉아 그가 숟가락으로 요거트를 한 입 떠서 내 입에 넣었다. 시계는 새벽 2시 47분. 아직도 땀에 젖은 몸뚱이 위로 차가운 플라스틱이 닿는 순간, 그가 속삭였다.

너랑 나랑 섞인 게 여기 있잖아.

숟가락 끝에 붙은 흰 덩어리를 가리키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눈을 감았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동안, 유리찍은 듯한 핏기 없는 눈동자가 번쩍였다. 아이를 원하는 그의 눈빛. 고개를 돌리면 반드시 그 눈이 나를 마주칠 것만 같았다.


그가 사라진 밤

그 눈빛에선 생명이 아니라 소유가 뿜어져 나온다.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가며 나는 생각했다. 아이는 아이일 뿐인데, 그 눈빛은 아이를 ‘채우는 물건’처럼 본다. 오래된 항아리에 술을 채우듯, 나의 배를.

다섯 명이면 끝이야.

지난달 결혼식장 복도에서 들었던 그의 형의 말이 귓가를 스쳤다.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 전부야. 형수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침대 위에서 나는 눈을 감고 그 다섯 명의 윤곽을 그려봤다. 그, 나, 아이 둘, 그리고 또 하나는 누구지? 숨이 턱 막혀 왔다.


눈을 감게 만드는 것들

올해 초, 회사 동아리 후배 지원이 카톡을 보냈다.

언니, 남편분이 쓰던 노트북에 아기 사진이 엄청 많던데요? 예쁜 아이였어요.

화면이 손끝에서 미끄러졌다. 지원이 말한 아이는 4~5살. 단정한 단발, 동그란 눈. 알고 보니 전 직장 동료 딸이었다. 남편이 매주 일요일마다 ‘조깅’ 나간다던 날, 그는 아이와 놀이터를 돌며 사진을 수백 장 찍어두고 있었다. 아이의 뒷모습, 아이의 웃음, 아이의 손등에 묻은 모래까지.

나는 노트북을 닫고 화장실에 갔다. 거울 속 눈동자가 바짝 말라 있었다. ‘나는 아기가 아닌가 보다. 나는 그저 그릇일 뿐이다.’


욕망의 해부

아이를 원하는 욕망이란, 실은 아이 자체가 아니라는 걸 나는 깨달았다. 그는 다음과 같은 환상을 먹고 산다. 분홍색 체크무늬 담요에 싸인 아기. 내가 젖을 물리며 대문 앞에서 웃는 아침. 그리고 자기가 서 있으면, 아기는 두 팔을 벌리고 ‘아빠!’ 하고 달려오는 장면.

그러나 진짜 아기는 울음소리로 새벽을 난도질하고, 나는 젖꼭지가 찢기듯 아프며, 그는 회사에 훅 가버린다. 그 눈빛이 두려운 건 딱 그 지점 때문이다. 환상이 깨질 때를 아는 눈빳. 그래서 나는 숨을 죽인다. ‘살아만 있으면, 내 몸은 그 환상을 삼킬 수 있어.’


임신은 결국 시간 도둑

고3 때 담임이 찾아왔다.

수진아, 너 미래에 뭐 될래?

나는 망설임 없이 ‘날씨기자’라고 말했다. 지구를 끝없이 돌며 태풍의 눈을 쫓고 싶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처음 깨달은 건, 혼전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이 떴을 때였다. 가슴이 찌르르했다. 기자 시험 준비반은 다음 주면 시작이었다.

병원에서 약을 받아 한 달 뒤, 남펵은 모르는 사이 아이는 사라졌다. 그날 이후, 그 눈빛은 더 간절해졌다. ‘빈 자리를 메워줘.’ 그러나 그 빈 자리엔 나의 과거, 나의 미래, 나의 이름이 들어앉아 있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소리

나는 소리 없이 묻는다.

내가 아기 대신, 내가 먼저 사랑받고 싶은 건가?

혹은

그가 원하는 건 아기가 아니라, 아기를 낳고 죽어갈 내 모습인가?


끝내 우리는 침실 문을 닫고 다시 만났다. 이불 속에서 그의 손이 내 배 위를 훑는다. 나는 숨을 뱉는다.

여기에 넣을게.

손끝이 떨린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래서 너, 그 아기를 낳고 나면 나를 어떻게 부를 건데?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