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아니. 조금 더...”
연희의 숨소리가 끊긴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내 손등에 굴러떨어질 때마다 나는 깨달는다. 아직도 모르는 게 있다는 걸. 그녀의 몸 위를 미끄러지던 내 손가락이, 늘 끝에서 끝으로 향하던 서툰 궤적이, 사실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했다는 걸.
그녀가 눈을 감는 순간, 나는 안다
내가 그녀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녀가 나를 움직이고 있다는 걸.
우리는 늘 ‘기술’을 찾는다. 손놀림, 압력, 속도, 각도. 유튜브의 조회수 300만 영상들은 충실히 가르친다. 여기를 누르고, 저기를 문지르고, 원을 그려라.
그런데 왜, 아무도 연희의 숨소리처럼 귀를 파고드는 소리를 만들지 못할까. 왜 아무도 그녀가 이마를 찌푸리며 다리를 떠는 광경을 재연하지 못할까.
진짜 금기는 ‘비법’이 아니었다. 진짜 금기는 그녀 자체였다.
흔들리는 침대 위에서, 너는 누구를 만지는가
지난 겨울, 정우는 유리가 처음 찾아온 밤을 기억한다. 아니, 그는 그날 밤을 끝까지 기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유리가, 그는 너무 많이 기억했기 때문이다.
“여기 아님.”
“그래, 여기도 아님.”
“...그래도 아님.”
유리는 정우의 손을 거칠게 잡아채 자신의 배꼽 아래로 밀어붙였다. 정우는 당황했다. 그는 ‘거기’가 아닌 줄 알았다. 교과서, 포럼, 동호회에서 배운 모든 정보가 한순간에 뒤틀렸다.
“나 지금까지... 틀렸어?”
유리는 대답 대신 정우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속삭였다.
“니가 날 만지는 게 아니라, 날 만지는 게 너야.”
정우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유리’라는 사람의 실체를 만졌다. 그리고 그날 밤 이후, 정우는 더 이상 ‘잘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대신 유리는 그에게 늘 똑같은 말을 했다.
“오늘은... 너무 정확해.”
엘리베이터 미러에 비친, 두 개의 눈
도현은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꿈속의 그녀는 이름이 없다. 다만 엘리베이터 유리에 비친 눈동자만이 선명하다. 그녀는 늘 뒤에서 그를 돌아본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은 나를 만지려 하지만, 사실은 당신이 당신을 만지는 거야.”
도현은 그 꿈에서 깨어나면 늘 손을 본다. 손가락 사이사이에 아무 것도 없지만, 뭔가가 묻어 있는 듯 불안하다. 그는 그날도 역시 혼자였다. 하지만 문득, 그녀가 지하철에서 마주쳤던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늘 mp3플레이어를 꽂고 있었다. 도현은 그녀의 귀에 꽂은 이어폰 코드만 봐도 심장이 뛰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지만, 도현은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그녀 역시 도현이 자신을 만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왜 우리는, 끝을 아는 게 두려운가
심리학자 루이스 아르페는 말한다. ‘절정’은 사실 ‘끝’에 대한 공포의 변주라고. 우리가 그녀의 절정을 원하는 건, 결국 그녀가 없어질까 봐 두려워서다.
손놀림은 그런 공포를 지연시키는 장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늦춰.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운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경험을 쌓는다. 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진짜 절정은 결코 내가 아닌 그녀에게서 시작된다는 걸.
나는 그녀를 만지지만, 그녀는 나를 드러낸다.
당신이 지금 떠올린 그녀는, 진짜일까
연희는 지금도 내 손 위에 누워있다. 그녀의 숨소리는 느려졌다. 눈을 감은 채, 그녀는 말한다.
“너는 아직도 나를 모르지?”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나는 그녀의 절정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그녀는 내 욕망의 끝을 드러내려 했으니까.
그래서 묻는다.
당신이 지금 떠올린 그녀의 절정은, 정말 그녀의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숨기고 싶은 당신 자신의 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