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이는 낫고 싶지 않아”
그녀가 문밖으로 나가던 날, 눈발이 흩날렸다. 병원 가방 하나만 끌고, 손에 쥔 건 다음 날 예약된 검진표.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말했다.
‘너 때문이 아니야.’ 그러나 그건 거짓이었다. 내가 알고 있었고, 그녀도 알았다.
말라붙는 입 속, 단 한 방울의 달콤한 독
그날 이후 나는 매일 그녀가 통증에 몸부림치는 장면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장면 속에는 나도 함께 있다. 하얀 병실 조명 아래서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릴 때, 나는 그 고통 위에 살포시 올라타 있었다. 그녀가 약해질수록 내 존재는 커졌다.
내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 그러니까, 그녀의 몸이 부서져가는 속도만큼 나는 더 강해졌다.
죄책감이라는 단어는 너무 착하고 나지맣다. 그건 사실 훨씬 거친 욕망이었다. 연약해진 연인 위에서만큼은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지위를 독점하고 싶었다. 병원 복도에서 약국 앞 줄까지, 모든 시선이 우리를 향할 때 나는 우리가 아니라 나를 바라보길 원했다.
실록과 같은 이별
사례 1. 지연과 태우
지연은 자궁경부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 전날, 남자친구 태우는 그녀의 손에 작은 메모지를 쥐어줬다.
‘내일 수술 잘 끝나면 결혼해줘.’
그 약속은 지연의 몸 위에 투명한 울타리를 쳤다. 관계는 더 이상 양보 게임이 아니었다. 병든 몸은 증거였고, 미래의 약속은 사슬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퇴원하던 날, 지연은 태우의 차를 타지 않았다. 그녀는 말했다.
‘네가 날 아픈 걸로 사랑하는 것 같아서, 차라리 여기서 끝내.’
태우는 지금도 그날의 빗방울을 떨어뜨릴 수 없다. 손에 쥔 건 지연이 떠나며 남긴 단 한 장의 처방전. ‘슬픔 유발자’라는 낙관이 선명하다.
사례 2. 수진과 한별
수진은 올가을 드물게 발병한 자가면역질환을 앓았다. 항약제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빠지자 한별은 먼저 울었다. 그래서 수진은 미용실에 가서 일부러 더 짧게 잘랐다. 한별이 그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수진은 물었다.
‘내가 아프니까 더 사랑스럽니?’
한별은 대답 대신 그녀를 끌어안았지만, 수진은 느꼈다. 포옹이 너무 깊어서 그녀의 빈자리까지 감싸려는 느낌. 겨울이 오자 수진은 연락을 끊었다. 한별은 아직도 그녀의 빈 모자를 베개 밑에 끼고 잔다. 냄새가 다 지워질 때까지.
왜 우리는 연인의 통증 위에 서 있고 싶은가
그건 결국 상처받은 구세주라는 지위의 달콤함 때문이다. 병든 사람 곁에 서면 모든 선택이 감춰진다. 헤어지는 건 배신이고, 떠나는 건 가해자다. 그러니까 나는 그 자리에 묶인다. 묶이길 원한다. 사실은.
내가 부서진 누군가를 지키는 동안, 나도 깨지지 않는다는 착각에 젖는 거야.
고통은 권력이다. 연인이 아플수록 나는 더 절대적인 역할을 부여받는다. 무엇을 먹일지, 언제 재울지, 어떤 말을 골라줄지. 그 모든 순간에 내가 신이 된다. 그리고 그녀가 나아지면—혹은 떠나면—나는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추락한다.
문이 닫힌 뒤의 냄새
아직도 나는 그날 눈발 속에서 우산 사이로 들어온 소리를 잊지 못한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세 번이었다. 첫 번째는 그녀가 나가는 것, 두 번째는 나의 입이 말라붙는 것, 세 번째는 내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서 ‘도움을 주지 못한 사람’으로 추락하는 것.
당신의 병이 누구를 위한 구명보트인지 생각해본 적 있나
나에게 남은 건 이제 식어버린 체온과 미래형 죄책감뿐이다. 그러나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괜찮을까? 아니면 그때 나는 그녀의 고통 위에서 내 연약함을 숨기고 있었던 걸까.
그녀가 아픈 걸 이유로 떠났다고 믿는 순간, 나는 누군가의 고통에 발 묶인 자유를 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