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진짜로 줄 수 있어?”
점심 무렵, 철봉 아래.
재민은 땀방울이 턱끝에 매달린 채 민지를 올려다봤다. 민지는 팔뚝을 톡톡 두드리며 미소를 흘렸다.
“근육 실루엣이 죽여주네. 나도 언젠간 저만큼 되고 싶은데.”
그 말 한마디에 재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내가 만들어주면 돼.’ 삼키고 또 삼켜도 목끝에서 뜨거운 말이 솟았다. 그날부터 그는 죽음의 세트라 불리는 1000회 덤벨 컬을 시작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 팔 안쪽에 붉은 균열이 생겼다. 속삭이듯 피어오르는 상처. 그는 손가락으로 살짝 벌려진 살갗을 눌렀다. 아프면서도 하드가 되는 쾌감.
한 달 만에 민지가 다가와 어깨를 쓰다듬었다.
“이제 좀 되겠다?”
재민은 그 말 한마디에 무릎이 풀렸다. 그날 밤 단톡방에 민지의 친구가 농담을 던졌다.
‘원하는 게 있다면 재민이 팔 한쪽도 뗴어 줄 거야’
재민은 이모티콘 없이 답했다.
‘진짜로요.’
--- 팔의 각인
피가 날 때마다 그녀가 웃는다
그녀가 손을 내밀면 내 온몸이 열려요.
재민은 느꼈다. 기쁨과 고통이 한 포인트로 수렴되는 지점. 민지의 시선은 온도계였다.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을까, 얼마나 찢길 수 있을까.
매 세트마다 민지의 눈빛을 상상했다. ‘지금 봐주고 있을까?’ 숨이 차올라도 멈출 수 없었다. 고통은 기쁨이 되었고, 피는 질투가 되었다.
“더 커져야 해, 더.”
아래층 필라테스실에서 유진이 민재에게 도넛을 거절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 “또? 너 무서워.” 민재는 도넛 두 개를 한 입에 쑤셔 넣고, 칼로리 계산서를 내밀며 웃었다. 민재의 뺨이 부어올랐지만, 유진이 올린 ‘단백질 도넛 인증’ 스토리를 기다리는 마음만은 가벼웠다. 그날 퇴근길, 유진이 DM을 보냈다. ‘도넛 먹고 나니 런지 세트 3개 더 했어, 미친 거 아니야?’ 재민은 그 소리를 들으며 바벨을 더 올렸다. 저 사람들도 나와 같구나.
--- 거울의 속삭임
거울 앞, 재민은 팔 안쪽 생긴 붉은 금이를 바라봤다. 민지에게 보여주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철학처럼 굳은 생각. 균열 속으로 붉은 살점이 보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아픈지도 모르게 웃었다.
이 아픔이 민지를 웃긴다면, 괜찮아.
--- 벤치 120키로의 허망함
재활치료실 선호는 하윤의 손길을 기다렸다. 어깨 인대가 찢어진 뒤에도 하윤이 붕대를 감아 주는 그 짧은 촉각적 사랑을 위해, 120키로를 다시 들어 올리겠다고 벼른다.
“벤치 120키로로 돌아가면, 하윤 씨가 다시 올까?” 그는 치료실 복도 끝, 하윤이 없어진 빈 공간을 바라봤다. 무릎을 꿇은 채 내려오는 내리막길. 그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선호는 다음 세트를 준비했다.
--- 끝에 선 팔
점심 무렵, 철봉 아래. 민지가 살짝 웃으며 재민의 팔뚝을 쓰다듬었다.
“이제 좀 됐네.”
재민은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했다. 이 팔을 잘라도 아깝지 않아. 그러나 민지는 그날 이후 한 달 만에 다른 트레이너에게 갔다. 재민의 팔은 여전히 굵었지만, 민지의 시선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
재민은 남은 한쪽 팔로 덤벨을 든다.
“더 커져야 해.”
이제는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거울 속, 자신의 균열난 팔만이 그를 지켜본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바친 몸 끝에, 네가 아닌 나만 남는다면 이건 사랑인가 아니면 감옥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