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겹치지 말자고요"
알코올 냄새가 스며든 차 안.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가로등 불빛이 번져 들어오는 유리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너랑 그녀의 시간은, 우리 부부의 시간하고 겹치지 마.
그게, 유일한 조건이야.
그 말이 끝나자 시트밸트가 살짝 쪼그라드는 소리가 났다. 마치 뼈가 부러지는 듯한, 경직된 실금이었다.
욕망의 무대 뒤
그의 눈은 피곤했다. 하지만 그 피곤 속에선 분노가 아니라, 정교한 계산이 빛났다. 사내는 아내의 애인에게 시간표를 제안하고 있었다. 월·수·금 새벽 2시부터 5시까지는 나의 몫이고, 화·목·토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는 그의 몫이라는 식으로.
왜 난 이 조건이 황홀할까? 이미 누군가의 몸을 빌려 쓰는 죄책감보다, ‘겹치지 않는다’는 경계선이 선명할수록 욕망은 날카로워진다.
첫 번째 이야기: 유리의 생일 케이크
유리, 34세, 그녀는 한낮에 직접 만든 쑥케이크를 들고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너랑 내 남편이랑, 내 생일을 두 번 쪄야 해서.
너한테는 오후 4시, 남편한테는 밤 9시.
케이크 위엔 ‘생일 축하해’라고 쓰여 있었지만, 식칼로 자르는 순간 초록색 반죽 속에 숨겨진 초콜릿 글씨가 드러났다. 둘 다 사랑해. 그녀는 단숨에 그 조각을 치워버렸지만, 나는 그 잔상을 혀로 벗겨 냈다. 누렇게 물든 쑥과 누런 침이 섞여, 우리는 달콤한 반역의 맛을 함께 삼켰다.
두 번째 이야기: 정원의 붉은 감시등
준혁, 40세, 그는 아내와 나의 만남을 허락한 대신, 집 앞 정원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했다. 매주 화요일 밤마다, 그는 5km 떨어진 식당에서 혼자 와인을 마시며 실시간 영상을 확인했다.
너도 봐봐, 우리 침대에서 우리 아내가 어떻게 눈을 감는지.
그는 나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영상 속 침대 시트는 새하얬지만, 우리가 뒤틀릴 때마다 자국이 찍혔다. 그 흔적은 48시간 뒤 그녀의 남편이 직접 빨래를 돌려 지운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왜 텀블러에 든 얼룩을 바라보며 흥분할까? 그건 흔적이 곧 지워진다는 확신 앞에서만 비로소 불타는 욕망이기 때문이다.
꺼지지 않는 촛불, 겹치지 않는 심장
인간은 금기를 두껍게 칠할수록 그 선을 따라 혀를 움직인다. ‘절대 건드리지 마’라고 쓰여 있는 자리일수록, 살갗이 먼저 반응한다.
겹치지 않는다는 조건은 사실 욕망의 가장 완벽한 촉매다.
시간표가 만들어질수록, 우리는 각자의 빈칸을 더 탐낸다. 남편은 아내와 나의 쾌락을 구경하면서도 아내가 빈 손으로 돌아오는 걸 확신한다. 나는 그녀가 다른 누군가에게 돌아간다는 걸 알면서도, 그 ‘돌아간다’는 사실이 금기의 맛을 증폭시킨다는 걸 안다.
그림자만 남긴 뒤
지금, 유리는 누구의 품에 있을까. 준혁은 카메라 속에서 무엇을 확인하려 할까. 나는 아직도 그 시간표를 지킨다. 월·수·금 새벽 2시부터 5시까지 빈 집에 누워, 그녀가 남긴 향만 맡는다.
너는 지금, 누군가에게 허락받은 관계를 꿈꾸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그 허락 위에 선 자신을, 어쩌면 가장 잔인한 애인이라 부르며 스스로를 응시하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