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버려진 다음날, 그는 다이아 반지를 꺼냈다

그가 떠난 지 열흘 만에 온 청혼 소식. SNS 속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고, 나는 그들의 불행을 기도했다. 버려진 자의 치열한 집착과 관계 권력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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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때문이야, 더 이상은 못하겠어.

문장이 떨어진 건 새벽 2시 47분. 윤수는 그 말 한마디로 채팅방을 나갔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시간 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하트 반짝이는 사진이 올라왔다. 다이아 반지. 손가락은 분명 내가 아닌, 너무 밝은 손등 위에 있었다. 캡션은 잔잔했다.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청혼 성공!'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가 뭐였는지를 알았다. 연습 무대. 리허설. 그가 진짜 무대를 꾸미기 전에 던져버린 연기용 소품.


그날 밤, 나는 왜 손에 든 술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그들도 결국 나와 똑같을 거야. 나처럼 발가벗겨지고, 똑같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될 거야.'

그런데 나는 왜 그것이 고소했을까. 왜 그녀가 망가지길 바랐을까. 그녀의 미래가 내 과거의 반복이 되길 원했다. 아니, 더 나아가서—그녀가 내가 겪은 것보다도 더 처참하게 부서지길 기도했다. 그건 단순한 복수심이 아니었다. 내가 느낀 굴욕의 크기를 누군가도 고스란히 겪어야만 내 상처가 정당해진다는, 미친 수학이었다.

나는 새벽 내내 그녀의 프로필을 들여다봤다. 사진 속 그녀의 미소는 내가 한 번도 받지 못한 종류였다. 빛나는 치아, 살짝 접힌 눈꼬리, 뻔뻔한 행복. 나는 그 행복을 찢고 싶었다. 그녀의 눈꼬리에 난 자그마한 주름 하나라도 구겨지길. 그래야 나도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실화처럼 쓴 두 개의 소문

첫 번째 이야기 — 지성과 수진, 29세

지성은 수진에게 4년을 함께했다. 대학 동아리 선후배에서 연인으로, 부모님 점심 상까지 오른 관계였다. 그러나 지난 12월, 지성은 갑자기 “회사 발령”을 이유로 헤어짐을 통보했다. 수진은 알고 있었다. 발령은 거짓말이고, 사내 동아리에서 만난 26세 혜지라는 여자 때문이라는 걸.

둘은 헤어진 지 열흘 만에 혜지의 유부녀 동호회 게시판에 글이 올라왔다.

‘오늘 운동장 한복판에서 청혼했어요! 우리가 첫 키스한 지 3주째 되는 날♥’

수진은 그날 동호회 사람들이 올린 영상을 봤다. 지성은 축구화를 신고 그라운드 한복판에 ‘MARRY ME?’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수진은 그가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소리를 질렀다.

‘혜지야, 너랑 평생 축구장도 함께 뛸래!’

수진은 그 영상을 47번 반복 재생했다. 그리고는 삭제했다. 그날부터 그녀는 혜지의 SNS를 수시로 팔로우했다. 혜지가 올리는 모든 사진 속 지성은 행복해 보였다. 수진은 눈이 시려오는 한편으로, 혜지의 실수를 기다렸다. ‘이 사람도 똑같이 찢길 거야.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 믿음 하나로 수진은 밤마다 두 눈을 부릅떴다.


두 번째 이야기 — 민아와 준혁, 32세

민아는 준혁이 ‘그녀’를 소개한 게 3월이었다.

‘민아야, 나 연애 시작했어. 네가 봤을 때 6개월은 버틸 것 같아.’

그 말의 의미를 민아는 이해했다. 준혁은 민아를 6년 동안 ‘그냥 친구’라고 불렀고, 민아는 그게 전부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가 ‘그녀’를 만난 지 한 달 만에 청혼했다. 한강 다리 위, 드론으로 반지 내려 보내는 오글거림의 전형이었다. 민아는 그 영상을 카톡으로 받았다. 보낸이는 준혁이 아니라, 공동 친구였다. 민아는 그날 술집에서 혼자 네 병을 비웠다.

다음 날, 그녀는 준혁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한강 다리 위에서 뽀뽀할 때, 그 입술이 6년 전 내 이마에 남겼던 입맞춤보다 뜨거웠을까?’

준혁은 답장을 안 했다. 대신 이틀 뒤, 민아는 ‘그녀’의 인스타 DM에 메시지를 보냈다.

‘준혁은 과거에 자살 충동이 있었어요. 약 먹고 응급실 실려 갔던 날도 있었고요. 혹시 아세요?’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민아는 저주라도 걸듯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날 밤, 민아는 준혁의 피드 한 칸을 발견했다. 스토리 하이라이트에 ‘우리의 100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그걸 눌러볼까 말까 17분 동안 망설이다가, 결국 휴대폰을 침대 밑으로 던졌다.


왜 우리는 그들의 행복을 무너뜨리길 원하는가

심리학자들은 이를 **‘패배자의 집착(comparative obsession)’**이라 부른다. 상대방의 새로운 행복이 나의 과거를 무색하게 만들 때, 우리는 과거를 다시 부활시키려 든다. 마치 나의 상처를 되살려야만 내 존재가 인정받는다는 착각. 연구에 따르면, 이 집착은 실제로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한다. 상대의 불행을 상상할 때, 쓰러진 자존감이 일시적으로 12% 회복된다는 데이터도 있다. 수치가 작아도, 가장 절망적인 순간엔 그 12%가 마약처럼 달콤하다.

더 깊은 욕망은 따로 있다. ‘나는 특별했다’는 증거를 찾는 것. 그러나 그가 누군가에게 더 빠르게, 더 화려하게 청혼한다는 건—내가 결코 특별하지 않았음을 폭로한다. 그래서 우리는 특별함을 되찾으려고 상대의 새로운 관계를 파헤친다. 알고 보면 그건 관계 권력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내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내 영향력이 남아 있길 바라는, 이기적인 희망.


당신은 아직도 그들의 행복을 새벽 세 시마다 체크하는가

우리는 왜 끝난 관계의 뒷풀이에 홀로 남는 걸까. ‘그들도 행복하지 않을 거야’라는 자기 위로는 언제쯤 지겨울까. 어쩌면 우리가 진짜로 원하는 건, 상대의 불행이 아니라 내가 다시는 버려지지 않을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음 사람에게는 내가 ‘마지막’이라는 확신을 주고 싶은 걸까.

지금 이 순간, 당신은 그들의 첫 기념일 사진을 확대해서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묻겠다.

‘당신이 원하는 건, 그들의 불행인가. 아니면 다시는 이런 굴욕을 겪지 않을 자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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