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날, 내 눈앞에서 잘생긴 남자가 피를 맛봤다

야구장 뒤 미완성 창고에서 목격한 살인. 피 묻은 손을 내민 그가 던진 한 마디, “이제 너도 가담자야.” 금기의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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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내 눈앞에서 잘생긴 남자가 피를 맛봤다

피 냄새는 달지 않았다. 철맛이 강하게, 눈 깜짝할 사이에 후각을 때렸다.

“숨 쉬지 마. 냄새 올라온다.”

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러나 내 귀에는, 처음 듣는 파열음처럼 터져 나왔다. 나는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틈으로 보이는 그의 손등만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손끝. 새하얀 셔츠 소매에 번지던 붉은 무늬. 그게 다였다.


1. 첫 맛

그날 밤, 난 야구장 뒤편 미완성 창고를 우연히 찾았다. 번개가 칠 듯한 봄비가 오기 직전이었다. 철제 문은 반쯤 열려 있었고, 문틈 사이로 내부를 가로지르는 형광등 하나가 쉬지 않고 깜빡였다.

‘누가 있나?’

발걸음을 멈추기엔 이미 늦었다. 안쪽에서 들려온 숨소리—낯익은 남자의 것이었다. 준. 우리 팀 동아리 후배였던 그가, 평소처럼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은 달랐다. 동물이 살을 뜯기 직전의 고요함, 나지막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마저 들렸다.

여자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땅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흔들렸다. 이름은 몰랐다. 다만, 팀원 민지가 “준 씨 전 여자래”라고 한번 흘린 적이 있었다. 지금 그녀의 눈은 흐릿했다. 눈물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준의 손에 낀 건 작은 스탠리 칼이었다. 손잡이는 검은색, 날은 7cm 남짓. 그게 어떻게 여자의 복부에 꽂혔는지, 나는 실제로 보지 못했다. 다만 소리—‘퍽’하는 낮은 충격음, 그리고 바로 이어진 물이 터지는 듯한 파열음—이 머릿속에서 뇌관이 되어 퍼졌다.

“아, 미안.”
준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미안함의 뉘앙스는 없었다. 오히려 실험실에서 스며나오는 낮은 감탄사 같았다.

피가 흘렀다. 처음엔 실처럼 가늘었다. 그러다가 여자의 흰 블라우스를 타고 퍼지며 넓은 강물로 변했다.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숨을 멈추면 더 크게 떨릴까 봐, 숨을 쉬면 소리가 새나올까 봐. 준은 고개를 숙여 여자의 머리카락을 한올 살폈다. 그 손길은 어떤 연인의 쓰다듬음처럼 다정했다.


2. 눈 맞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 내가 숨어 있는 문 쪽으로. 눈이 마주쳤다.

순간, 모든 소리가 멈췄다. 비 오는 소리, 여자의 신음, 심장 소리까지. 준은 살짝 눈을 좁혔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아주 작은, 겨우 입꼬리가 올라간 듯한 미소였지만, 나는 그 느낌을 온몸으로 받아쳤다.

‘봤구나.’

그의 입술이 움직인 것 같았다. 실제로 들린 건 아니었다. 그러나 속삭임이 내 귓가에 닿았다.

“이제 너도 가담자야.”

나는 도망치지 못했다. 다리가 풀렸다. 준은 천천히 일어서더니, 피 묻은 칼을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여자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짧은 간격의 흡착음, 마치 잠긴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같았다.

준은 내게 걸어왔다. 한 걸음, 두 걸음. 창고의 형광등이 켜졌다 꺼졌다 반복했다. 그의 눈동자만이 유난히 선명했다. 검은 눈, 그 안에선 내가 비쳤다. 초점은 흐려졌다가 또렷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고개를 끄덕였는지, 나도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우리가 하나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3. 피 묻은 손

준은 내 손목을 잡았다. 차갑고 끈적였다. 피였다. 여자의 피가 아니었을까. 나는 몸을 떨었다. 그러나 준은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문을 나서는 순간, 봄비가 우리를 적셨다. 냄새—시멘트 냄새, 습기, 그리고 여전히 피—이 섞여서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은 시계를 한번 보았다. 새벽 2시 17분.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수신자는 ‘민석’이었다. 내가 아는 민석은 아니었다.

“청소 끝.”
두 글자. 그게 다였다.

나는 물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죽였어?”

준은 대답 대신 나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펴서, 내 손바닥 안에 무언가를 놓았다. 작고 납작한 금속 조각이었다. 칼날에서 떨어진 파편. 아직 따뜻했다. 나는 그걸 꼭 쥐었다. 손바닥이 따끔했다. 아픈지 따뜻한지조차 모를 정도로, 감각이 뒤섞였다.


4. 우리의 공범

돌아오는 길, 택시 안은 적막했다. 준은 창밖을 보며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 불이 켜지는 순간, 그의 턱선이 일렁였다. 난 여전히 그 손에 들린 피 묻은 조각을 잡고 있었다.

“왜 나를 봤을 때 웃었어?”

준은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네가 기뻐할 거라 생각했거든.”

“…기뻐?”

“그래. 너도 원했잖아. 그 여자가 사라지길.”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준이 맞았다. 민지가 그 여자와 친해지는 걸 보며 속으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걸 준이 꿰뚫었다. 준의 눈동자는 나를 비추며 말했다.

“이제 너도 피 묻었어.”


5. 숨결

그날 이후, 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출근했다. 팀 회의에서도 여전히 논리적이었고, 후배들에게는 관대했다. 그러나 나만 알았다. 그가 커피를 마실 때마다, 입 안에서 아직도 피 맛이 난다는 걸.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때, 살짝 벗겨진 손가락 굳은살 아래 새하얀 피부가 드러난다는 걸.

며칠 뒤, 나는 그를 따라갔다. 김포공항 로비, 새벽 2시 47분. 그는 또 다른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아’라는 이름이 들렸다. 그녀는 캐리어를 끌며 다가왔다. 준은 거기서 뭔가를 꺼냈다. 작은 카메라. 그녀의 가방에 슬쩍 넣었다. 내가 숨어 있던 기둥 뒤에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순간, 준이 고개를 돌렸다. 또 나를 봤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이제는 우리만의 미소였다.

“또 봤네.”


6. 금기의 온도

왜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을까. 나는 매일 밤 같은 꿈을 꾼다. 붉은 강물 위를 걷는 꿈. 발끝에 피가 차올라도, 나는 멈출 수 없다. 준은 강 건너편에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 너도 알지, 금기는 달콤하다는 걸.”

심리학자들은 ‘금기’라는 단어에 ‘절제’를 붙인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건 절제가 아니라, 터질 듯한 과열이다. 준은 우리의 늑대 같은 눈을 깨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눈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깊이 숨었다. 그러나 준은 우리를 찾아냈다. 피 묻은 손으로 우리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신도 죽여본 적 없다고 장담할 수 있어?”


마지막 불빛

오늘 밤, 나는 다시 그 창고 앞을 지난다.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인다. 문은 살짝 열려 있다. 그리고 안쪽에 누군가가 서 있다. 준이 아닐 수도 있다. 혹은 나 자신일 수도 있다.

나는 손을 내민다. 피 묻은 손. 아니, 피 묻은 손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손. 그러나 문은 열려 있다.

“이제 들어와.”

나는 한 걸음 내디딘다. 그리고 문이 닫힌다. 봄비는 여전히 내리고, 피 냄새는 달지 않다. 다만, 모든 게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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