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친구의 머릿결에 손이 가는 순간, 나는 이미 범죄자였다

순진한 두 손이 머리카락 속으로 파고들 때, 우린 모두 목이 타들어가는 갈망을 숨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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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드라이어 바람이 목덜미를 스칠 때, 지수는 눈을 감았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말라가며 올라오는 연기처럼 그녀의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내 손끝은 이미 그녀의 두피에 닿아 있었고, 머릿결 사이로 빠져나오는 미세한 떨림이 내 손등을 따라 심장까지 달려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도움이 아니라 범죄였다는 것을.


머릿결에 새겨진 지도

머리카락은 신체에서 가장 노출된 동시에 가장 민감한 국경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정작 건드리면 침범이 되는 모순의 영역. 그래서 우리는 머리를 만질 때마다 ‘괜찮은가’를 끊임없이 재느라 숨을 죽인다. 머릿결이 갈라지는 틈새로 드러나는 두피의 붉은 기운만으로도, 상대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알 수 있다. 머리카락은 말없이 시시각각의 체온을 누설한다.

손끝으로 살폴 때 느껴지는 미세한 가늘기, 손등으로 스쳤을 때 붙잡히는 끈적임, 혹은 바람에 날려 머리카락이 스며드는 냄새. 그 모든 감각은 한 사람의 하루를 즉각 번역한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허용된 접촉 안에서 가장 치밀한 스캔닝 장치다.

“그녀의 머리카락 뒤에 내 얼굴을 묻고 싶다는 생각은, 사실 그녀의 삶 속으로 숨고 싶다는 고백이다.”


세손이와 유진의 화요일

중학교 2학년 봄부터, 세손이는 매주 화요일 유진의 머리를 다듬어 주었다. 미용실 대신 비좁은 방 한쪽에서, 유진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였다. 세손이의 손끝은 먼저 가위를 찾기보다, 유진의 머릿결을 먼저 확인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처럼 서걱이는 끝부분, 손끝에 닿는 부분만 가벼운 온기로 변하는 차이가 세손이의 가슴을 핥았다.

‘이 옆머리가 너무 기네, 너가 좀 다듬어 줄래?’

유진은 늘 똑같은 말로 시작했다. 세손이는 조용히 드라이어를 켜고, 유진의 머릿결에 따뜻한 바람을 뿜었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릴 때마다 유진의 뒷목이 붉게 물들었다. 세손이는 그 붉어짐을 바라보며, 손가락이 젖은 머릿결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고 싶다는 충동을 삼켰다. 향이 올라올수록, 유진의 눈을 감은 채 흘리는 숨소리가 선명해졌다. 세손이는 그 모든 것을 감각의 유혹이라 부르기로 했다. 거기엔 말할 수 없는 단맛이 있었다.


금기의 달콤한 경계

심리학자들은 머리카락을 ‘안전한 금기’라고 부른다. 신체의 일부이면서도 동시에 ‘허용 가능한 부분’으로 분류된다. 머리를 만지는 행위는 ‘적절한 침범’이라는 이름으로 관대해진다. 하지만 그 적절함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더 깊은 접촉을 상상한다. 머리카락은 머리를 둘러싸고 있지만, 결국 살결은 아니다. 그래서 손끝으로 만질 수 있고, 머릿결 사이로 내 손을 더 깊게 넣고 싶어진다.

연인은 되지 못하고, 가족도 아닌 사이에서 머리카락은 단 하나의 특권이 된다. 그 특권은 언제든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아른거린다. 머릿결이 말라갈수록, 손가락이 더 이상 들어갈 틈을 잃어가는 순간이 오면, 우리는 아쉬움에 목이 메어든다.

“친구의 머리를 만질 때 나도 모르게 떠올리는 건, 그녀가 눈을 감고 있을 때 내 입술이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드는 장면이다.”


지수의 머리가 말라갈수록, 내 손끝은 점점 가벼워졌다. 마치 하루의 끝에서 모든 열기를 끌어안은 연기처럼, 그녀의 체온이 서서히 흩날려갔다. 드라이어를 끄자 방 안에 남은 건 부드러운 머릿결과, 아직 식지 않은 손끝의 떨림뿐이었다. 지수는 눈을 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드라이어 좀 사야겠다.”

나는 그녀의 머릿결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쓸어내리며, 잠시 말을 잊었다. 그녀는 모른다. 이미 그 머릿결 속으로 손끝이 파고든 순간, 나는 허락받지 못한 영역을 넘어섰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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