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한복판에 놓인 그의 손목시계
새벽 2시 47분, 시계는 이불 위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다. 태엽이 멈췄는지 초침도 떨지 않는다. 나는 그걸 들었다 놓았다를 다섯 번 반복하다 잠든 척한다. 옆자리에 누운 남편의 숨소리는 이미 죽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일까. 팔뚝이 시려운 건 에어컨 때문이 아니다.
욕망은 언제부터 시체가 된 걸까
처음엔 농담이었다. “우리 침대가 너무 넓어서 중간이 허전하네.” 그가 웃으며 다리를 걸어 넣었다. 그게 2017년 3월, 결혼 6개월 차. 그날 이후 우리는 중간선을 만들었다. 발가락이 살짝 닿으면 뜨거운 감전, 발가락이 스치지 않으면 차가운 전쟁. 선은 하루가 다르게 두꺼워졌다. 베개는 각자의 영역을 지키는 투명 벽이 되었고, 누가 먼저 넘어가느냐가 패배였다. 그렇게 1,826일이 지났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숨만 죽이는 걸까.
그녀의 이름은 수진이었다
지난 5월, 회사 워크샵에서 만난 여자. 오후 11시 17분, 카카오톡을 확인하니 수진이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 하나. 술집 화장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목덜미. 목걸이가 반짝이는 대신 촛농 자국이 선명하다. 그 아래 한 줄. “오늘은 네가 안 오는 게 아쉬워.” 화면 꺼짐. 나는 8초 만에 잠금 해제했다 다시 잠근다. 뒤척이면서도 남편의 등을 건드리지 않으려 팔을 꼿꼿이 세운 채 잔다. 이건 불륜이 아니야. 아직 손도, 입도 맞대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그건 단순한 성적 긴장이 아니었다. 가능성이란 단어를 입가에 물고 다니는 기분, 실은 그게 더 황홀했다.
두 번째 이야기, 은지와 나
은지는 38세 유부녀, 나와 헬스장에서 스쿼트 랙을 번갈아 쓰다 친해졌다. 어느 날 샤워실에서 마주쳤는데, 운동복이 젖어 비치는 가슴 라인이 서로를 알아봤다. 그만큼 단단해진 욕망. 우리는 ‘저녁에 술 한잔?’이라는 무해한 제안으로 시작해, 한 달 만에 모텔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침대마다 냄새가 다르다. 남편과의 침대는 동상의 냄새, 은지와의 침대는 젖은 모래 냄새. 둘은 서로의 반지를 벗어 침대 옆 탁상 위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금빛 고리 두 개가 서로를 비추며 반짝였다.
“당신도 매일 똑같은 거 먹는 느낌 아니에요?” 은지가 속살았다. 나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등에 살짝 입을 맞췄다. 차가운 피부 위로 따뜻한 숨이 스며드는 순간, 그 느낌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문득 깨달았다. 조심스럽게 스친 그 입맞춤이 나를 얼마나 뜨겁게 만들었는지도. 이게 얼마나 깊어야 진짜 불륜일까. 아직 피 맛이 나지 않으니, 아직은 모르겠다.
왜 우리는 허락을 구하지 않는가
심리학자 에스터 페렐이 말했다. "불륜은 반드시 성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갈망이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의 운명으로 굳어진 자신을 부정한다. 그래서 불륜은 문지방에 서 있는 순간이다. 한 발을 내밀면 모든 규칙이 산산조각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우리는 끝내 말하지 못한다. ‘이제 그만 자자’ 혹은 ‘사랑하자’ 아무 말도. 왜냐고? 말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서로를 영원히 잃을지도 모르니까. 차라리 침대 위에 시체 두 구가 나란히 누워 있는 쪽이 낫다.
숨을 내쉬는 순간
오늘 밤, 나는 다시 시계를 들었다. 초침이 살짝 떨린다. 남편은 여전히 고요한 코골이를 내뱉는다. 내 손에 들린 시계는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그를 살짝 흔든다. 눈을 뜨면 어떻게 할까. 나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 침묵이 나의 불륜을 막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신도 오늘 밤, 누군가의 숨소리를 듣고 있는가. 그리고 그 숨소리를 끊고 싶은 손끝을 얼마나 오래 더 끌어안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