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지하주차장. 46세 준영은 차 문을 열다 말았다.
- 너, 왜 그래?
- 뭐가요.
- 네가 먼저 열려고 했어.
차 문 손잡이를 먼저 잡으려던 32세 재우의 손목을 준영이 꽉 쥐었다. 뼈가 삐걱거릴 듯한 힘. 재우가 웃었다. 그 웃음이 너무 어두웠다.
‘이제는 청순한 연애 안 해. 정숙한 남자 따윈 필요 없어. 사기꾼이라도 돼, 내 앞에서만은.’
내가 숨겨둔 발톱이 드러나는 순간
40대 이후, 준영이 찾는 남자는 달라졌다. 20대엔 ‘착한 남자’ ‘믿을 수 있는 남자’를 찾았다. 마흔이 넘자 가슴이 뜨거운 이유가 달라졌다.
‘착한 남자는 끝까지 나를 지켜줄까?’
‘아니, 그는 그냥 지루한 거야.’
이제 준영은 숨겨진 늑대를 찾는다. 외롭게 뛰어다니다가도 한순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낼 남자. 그 가능성이 발가벗은 몸처럼 뜨겁다.
이름 모를 당신의 어두움
그녀와 처음 만난 건 친구의 파티였다. 동네 살롱에서 일하는 43세 지아. 유부남을 두 번 사랑했다가 끝내는 홀로 남았다.
- 나도 모르게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 더 깊은?
- 아무것도 보장 안 되는 곳. 거기서 한 번 죽어보고 싶었어요.
첫 번째 남자는 증권맨이었다. ‘착한 남편’ 코스프레를 하던 남자는 지아가 임신하자마자 사라졌다. 두 번째 남자는 대학원생. 어린 아이처럼 지아를 찾았다가, 어느 날 새벽 잠적했다.
지아는 새벽 3시, 그가 남긴 담배 냄새만 남은 침대에서 손가락을 물었다.
‘나는 왜 이 냄새가 더 달콤한 걸까.’
위험을 기다리는 시간
45세 미선은 매주 목요일 밤, 똑같은 시간 같은 카페에서 그를 만난다. 39세 민수. 아내가 있다는 걸 미선도 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를 만난다.
- 오늘은 조금 늦겠대요.
- 또?
- 아내가 아프대요.
민수가 오지 않는 밤, 미선은 그의 아내가 어떤 표정일지 상상한다.
‘고통스럽게 웃고 있을까. 아니면 눈을 질끈 감고 있을까.’
이 상상이 미선을 더 뜨겁게 만든다. 민수가 아내 옆에서 미선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는 순간, 그 굴욕이 미선의 욕망을 지글지글 끓인다.
왜 우리는 이 늑대를 찾는가
엄마가 되고, 사회의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고 나니, 더 이상 안전한 건 재미가 없다. 40대 여자의 욕망은 숙성된 와인처럼 어두운 광택을 띤다.
‘사람들은 나를 아는 줄 안다. 나조차도 나를 아는 척 한다. 그런데 아냐.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싶어.’
숨겨진 늑대는 우리가 스스로를 속였다는 걸 알려준다. 그래서 더 뜨겁다.
숨겨진 늑대의 손등
준영은 결국 재우의 차를 타고 간다. 그의 손등에 새겨진 흉터를 본다. 20대 여자가 남긴 흔적이라고 했다.
준영은 그 흉터를 입으로 만진다.
- 너 누구한테도 이렇게 안 당했다며?
- 아직은요.
재우가 준영의 머리카락을 한 줌 움켜쥔다.
‘이제는 나도 모르게 상처를 낼 수 있겠다는 늑대를 원한다. 그리고 그 늑대의 이빨 아래에서, 나는 누구인지를 다시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끝까지 당신을 지켜줄 순진한 남자인가, 아니면 한순간이라도 눈을 돌릴 수 있는 늑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