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티 나, 무릎 꾹 닫아.” 엄마의 손끝이 달려들었다. 소매를 밀어 올리며 짓이겨 버릴 듯 닦아 냈다. 초등학교 3학년, 방과후 교실. 3초 만에 내 무릎 위로 흩날리던 손발자국이 사라졌다. 그날부터 이쪽 허벅지 안쪽은 절대로가 됐다. 닫히고, 다시 닫히고, 다리를 꼬아서까지 가린다. 그 민감한 살결은 다만 숨겨야 할 빨간 펜 선이었다.
숨겨야만 했던 이유, 다시 드러내고 싶은 이유
엄마의 두 손이 닿은 건 단순한 무릎이 아니었다. 피부 위에 새겨진 작은 점, 태어날 때부터였다는 기미, 엄마가 뜨거운 다리미로 지우려던 흉터. 무엇이든 간에 ‘남이 보면 안 된다’라는 메시지가 살갗 깊숙이 새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이쪽 허벅지 안쪽을 누군가에게 스치게 되면, 그 떨림이 온몸으로 퍼진다. 네 숨결이 닿는다면, 나는 어떤 소리를 낼까? 네 혀끝이 미끌거린다면, 나는 어떤 맛을 내뱉게 될까?
지워진 자국, 다시 번쩍이는 순간들
1. 유리의 브라운 스팟
유리의 목덜미에 멍든 듯한 커피색 무늬가 있다. 엄마는 늘 “니가 머리 숙이고 살아서 그래”라며 손등으로 덮었다. 스물다섯, 연인 재훈이 유리의 뒷목을 천천히 핥았다.
“나도 이게 싫었는데, 네가 좋아하니까 괜찮아졌어.”
재훈의 입술이 퍼즐처럼 무늬를 따라간다. 숨결이 뜨거워질수록 유리의 허리가 뒤로 젖혀진다. 그날 이후, 유리는 머리카락을 모두 넘겨 그 지도를 드러낸다.
2. 수아의 굽은 손가락
아홉 번째 손가락이 약간 휘었다. 엄마는 “니가 그래서 음악학원에서도 뒤처지지”라며 손등을 쥐었다. 스무 살, 술집 뒷골목에서 처음 만난 이가 수아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이거 연주할 때 생긴 거야?”
수아는 웃으며 잔을 내려놓는다. 굽은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관객의 시선이 뜨겁게 번쩍이는 순간, 엄마가 숨기라던 곳은 가장 화려한 시그니처가 된다.
금기의 뒷면, 관능의 얼굴
인간은 누구나 결함을 품고 태어난다. 그 결함이 가려야 할 흠으로 분류되는 순간, 그것은 금기가 된다. 엄마는 아이의 결점을 덮으며 사회적 시선을 우선한다. ‘누가 봐도 괜찮은 아이’가 되라는, 냉정한 보호막.
하지만 우리는 결국 누군가에게 결점까지 드러내며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은 금기를 벗어나는 순간 관능이 된다. ‘이것도 괜찮아?’라고 넘치도록 묻는 몸. 네가 받아들여준다면, 나는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된다.
심리학자 윈니콧은 ‘True Self(참자아)’의 핵심으로 아주 작은 결함을 꼽았다. 그 결함이 사랑받을 때 비로소 인간은 온전히 연결된다. 한편 프로이트는 ‘기형 콤플렉스’를 말했다. 아이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기형을 드러내며 동시에 사랑받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숨겨진 구석은 성인이 되어 가장 뜨겁게 드러내고 싶은 지점이 된다. 이 역설을 우리는 ‘집착’이라 부른다. 집착은 금기의 훈련된 근육이, 한 번 풀리면 뒤틀린 만큼 강렬해진다.
너도 한 번은
네가 숨기라던 부분, 네가 드러내라고 유혹한 적은 없었나? 그리고 누군가 그걸 받아들인 순간, 너는 어떤 느낌이 들었나?
엄마가 못 보라던 곳. 내가 그곳을 자랑스럽게 드러낼 때마다, 나는 한 명씩 다시 태어난다. 그 대가로 너도 누군가의 어두운 곳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괜찮을까,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