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에 두고 가, 민수야"
화장실 문이 살짝 열렸다. 안에선 샤워 소리가, 밖에선 숨소리가 맞닿았다. 침대 위로 던져진 핸드폰이 울렸다. 19년 만에 보는 ‘수진’의 이름 위로, ‘남편’이라는 단어가 푸른 불빛으로 떴다.
아직 집에 안 왔어? 오늘도 늦을 거면 알려줘.
잠긴 화면 속 문장이, 낯선 남자의 목소리로 읽혔다. 내가 지금 그의 아내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걸까. 아니면 모르는 걸까. 둘 중 어느 쪽이 더 불쾌할까.
욕망의 봉인이 풀리는 순간
49세. 우리는 각자의 결혼생활을 15년 이상 버텨냈다. 수진은 그사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됐고, 나는 사업이 망해 집 한 채를 잃었다. 그런데도 재회하자마자 첫 키스는 고등학교 시절로 데려갔다.
이건 아니잖아. 술집에서 그녀가 말했다. 열린 관계를 꿈꾸는 남편과의 약속. 한 달에 하루, 몸만 만나는 허락이라는 말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욕망을 인정하기로 했어. 단, 비밀로만.”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이 말이 진짜인지, 나를 위한 변명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주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금기의 온도
열린 관계의 아이러니는 여기서 시작된다. 허락받은 배신은 배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래서인지 더 선명하게 남는 것은 죄책감의 잔재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금기의 역설적 효과’라 부른다.
아무리 허락받았다 해도, 과거의 기억은 금기로 남는다. “우리는 이미 끝났어야 해”라는 사실이, “그래서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유를 만들어낸다.
문 앞에 놓인 남자의 구두
샤워가 끝났다. 수진이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나왔다. “나갈 때 조심히 나가. 남편이 아침에 와서 차 가져간다고.”
그녀가 내민 카드키. 문 앞에 놓일 남자의 구두. 그리고 침대 위에서 말라가는 것들.
문이 닫히면, 나는 다시 19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에게 학교 가라고 소리칠 것이다.
아침 6시 14분. 나는 아직 문 앞에 서 있다. 신발장 위에 남자의 구두가 놓일 자리가 비어 있다. 그 틈에, 어젯밈의 뜨거움이 서서히 식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