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베개에 누워 있는 게 너 맞니?"
뉴스터디룸 앞. 서른일곱의 주현은 남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손에 든 아메리카노를 쥐었다. 아직 이혼 서류는 서랍 한쪽에 끼워 놓은 채. 그저 잠깐 쉬어가자던 말이 61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이불을 홀로 걷어 올렸다. 냄새 하나 바뀐 게 없는 침대 시트 위에서, 그녀는 누가 사라졌는지보다 누가 들어올지를 떠올렸다.
그리운 것은 몸이 아니라, 상처의 형태
그는 내 옆에 없지만, 내 안에 아직 남아 있어.
결혼 생활은 서로의 몸을 하나의 지형도처럼 새기는 과정이었다. 오른쪽 어깨의 번쩍이는 힘줄, 왼쪽 허벅지 안쪽의 연한 주근깨. 하지만 사라진 건 그 윤곽이 아니었다. 머리맡에 있던 숨소리의 파장. 그 파장이 사라진 순간, 주변 공기는 성긴 구멍으로 넘실거렸다. 그 구멍을 메우고 싶던 본능이 살아났다. 혼자 누운 첫날 밤, 사람들은 흔히 ‘외로움’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건 겉멋일 뿐이다. 사실은 비어 있는 자리에 무언가를 꽂고 싶은 사악한 기대다.
두 개의 방, 두 개의 침대
사례 1. 은지의 서랍장
은지, 마흔두 살, 마케팅 팀장. 지난해 남편이 새벽 2시 47분에 가방을 들고 나간 뒤로,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양치질용 타이머를 두었다. 3분이 지나면 진동이 울린다. 그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세 달째 되던 날, 그녀는 타이머가 울리기 30초 전에 예민하게 몸을 일으켰다. 타이머는 누가 와서 멈춰준다는 착각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만취한 채 동네 바텐더를 데려왔다. 하지 않았다. 그저 ‘혹시’라는 단어 하나를 품은 채, 그의 숨결을 옆구리에 대본 것이다. 아침이 되면 바텐더는 사라졌고, 타이머는 여전히 3분마다 울렸다.
사례 2. 상우의 손전등
상우, 서른여덟 살, 대리운전 기사. 아내가 떠난 지 이십일째. 옥상 자취방 침대는 좁아서 누우면 벽에 손이 닿았다. 그는 휴대용 손전등을 켜서 천장에 비추곤 했다. 빛에 비친 손가락 그림자를 보며, 아내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들었다. “당신은 나를 볼 때보다 나를 떠올릴 때 더 뜨거워.” 그 말의 의미를 처음으로 깨달은 건, 혼자 누운 밤이었다. 그림자를 통해 자신의 손이 아닌 ‘누군가의 손’을 상상했다. 그 순간, 상우는 그림자를 따라 움직이며 스스로를 움켜쥐었다. 사정하기 직전, 손전등을 껐다. 어둠 속에서 그는 아내의 목소리 대신, 아무도 없음의 실루엣을 품었다.
혼자 누운 몸속에 숨은 타인
상실은 흔적을 남긴다. 다름 아닌, 빈 자리에 대한 제3자의 환영. 뇌과학자들은 이를 ‘신경 가소성의 뒤틀림’이라 부른다. 긴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의 뇌가 하나의 리듬으로 맞물리게 만든다. 그 연결고리가 끊기면, 뇌는 억지로나마 그 빈 리듬을 메우려 든다. 그래서 우리는 문득 누군가를 떠올린다. 옆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 결코 올 수 없는 사람을. 이는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금기의 흥분이다. ‘여기 있어선 안 될 X’를 머릿속에 끌어들이는 쾌감. 그리하여 11년의 끝에서 우리는 혼자 잠든다. 그리고 그 혼잣말 속에 다른 이름을 끼워 넣는다. 그건 아마, 사랑도 증오도 아닌, 미완의 욕망 그 자체다.
문을 두드리는 건 너의 목소릴까
침대 옆 조명을 끄자, 방 안은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귓가에 맴도는 건 ‘그’의 숨소리가 아니라,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자장가 같은 공기다. 그 속에서 너는 누구를 불러낼까. 아니, 누군가를 불러낼 때 너는 너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