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잡고 자자’는 약속이었다.
새벽 두 시, 종로 뒷골목 모텔. 침대 끝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나는 그녀가 이불 속으로 슬그머니 들어오는 걸 느꼈다.
*손만*이라는 말이 얼마나 독한 마약인지, 그때는 몰랐다.
검은 속옷 위로 손끝이 스며들었다. 0.8초, 아마. 그 사이에 나는 죄를 다 지었다. 더 깊이 파고들기도, 완전히 멈추기도 못 한 채 우리는 눈을 맞추지 못했다.
- 방 안 가습기가 쉭쉭 대며 우리의 입을 막았다.
끝내 누르지 못한 스위치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밤 그 0.8초를 되감아봤다.
‘그때 손끝만 조금 더 움직였다면… 아니, 아예 끝까지 멈췐 채 발길을 돌렸다면?’
두 갈래 욕망이 나를 찢었다. 한쪽은 이미 늦었으니, 적어도 끝까지 가보자고 졸랐다. 다른 쪽은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 있다며 냉소했다. 결국 나는 둘 다 선택하지 못했다.
그 미완의 흔적이 이젠 독이 되었다. 그녀의 체온은 아무도 갖지 못한 채, 오롯이 내게만 말라붙어 버렸다.
사실 나는 그날 밤 눈을 감은 뒤, 아주 짧은 꿈을 꿨다.
아직도 차가운 손끝
‘채원아, 미안.’
나는 그녀의 이름을 처음 부르지도, 마지막으로 부르지도 못했다. 그래서 지금 혼잣말로 수백 번 불러도 입 안이 메말라간다.
채원은 28살 생일날, 나에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줬다.
*‘오늘 하루만 너한테 몸을 맡길게. 하지만 그게 끝이야. 어떤 연락도, 다시는 안 올 거야.’*
스튜디오텔 침대맡 벽에 걸린 거울이 우리를 두 배로 비췄다. 속삭이듯 옷을 벗던 그녀의 손놀림이 떨렸다.
- 브라 훅이 풀리는 소리, 철컥.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몸은 앞으로 아무도 못 갖는다. 아니, 누군가는 갖겠지. 하지만 그 또한 오늘의 나처럼 이 몸이 스스로 잠그려는 문 앞에서 좌초할 테니.
결국 나는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고 멈췄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더 가까이 하면 터질 것만 같았다.
채원은 눈을 감고 작은 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게 맞아.”*
새벽 네 시. 그녀는 말없이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문고리를 흔들며 사라졌다.
나는 침대 시트에 남은 한 방울의 냄새만큼도 가둬두지 못했다.
아무도 가지 못한 신체
그 뒤로 나는 두 명의 남자를 만났다.
하나는 대학원 선배, 다른 하나는 직장 동기. 둘 다 ‘처음’을 먹지 못한 남자들이었다.
선배는 후배 여자친구와 3년을 만났다. 결혼 직전, 여자친구가 과거를 털어놨다.
“난 전에 한 번도 안 해봤어. 그래서 너랑도 못 해.”
선배는 그날부터 매일 술을 마셨다. 왜 3년 동안 눈치채지 못했는지, 왜 자신은 받지 못했는지.
동기는 더 아프다. 그는 결혼 5년 차에 우연히 아내의 일기를 발견했다.
*‘내 몸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사람의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남편은 사랑하지만, 내 살결 깊은 곳엔 다른 체온이 차 있다.’*
동기는 이혼 서류를 들고 아내를 찾아갔다가, 스스로를 창밖으로 던졌다. 다행히 2층이라 중상. 부부는 여전히 한 집에 산다. 서로 ‘처음’을 뺏기지 못한 표정으로.
왜 우리는 ‘처음’에 홀리는가
심리학자 레오나드 설링거는 ‘처녀적 상실’을 단순한 경험 부재가 아닌, ‘절대적 금기의 잠재력’으로 설명한다.
한 번도 열리지 않은 문은 마음속 어딘가에 계속 열려 있을 수 있다. 반대로 한 번 열렸다 닫힌 문은, 영원히 닫힌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그 미개척지를 가슴 속에 끌어안고 사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채원의 몸을 머릿속에 키운다.
*그녀는 아직도 샤워기 아래 서 있고, 나는 아직도 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서로를 한 번도 품지 못했기에, 품은 듯한 착각 속에서 자란다.
너도 한 번, 아무도 가질 수 없는 몸을 만난 적 있니?
그리고 지금도 그 체온이 식지 않기를 바라는 건, 사랑일까, 아니면 두려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