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고른 곳은 지하 주차장 맨 끝 칸이었다. 검은 벤츠 안 조수석, 손바닥에 끼워준 반지 대신 그는 내 엉덩이를 살짝 움켜쥐었다.
- 여보… 아니, 야.
한 글자 차이의 실수. 그 한 글자가 26년의 결혼을, 3명의 자녀를, 겹겹이 쌓인 앨범을 한순간에 내려놓게 했다.
그가 비운 자리는 내가 아니었다
그의 욕망은 내 몸에 몸을 얹는 것보다 훨씬 교묘했다. 나 대신 비어 있어야 할 곳을 채우고 싶어 했던 거다.
아내가 어깨를 맞대고 잠든 밤마다, 그는 눈을 뜨고 늘 같은 상상을 했다고 했다.
“침대 왼쪽 모서리에 아무도 없어야 해. 네가 그 자리을 차지하면, 나는 다시 결혼 전으로 돌아가는 거야.”
나는 그에게 시간여행 티켓이었다. 52세 남자의 눈에 비친 32세 나는, 아직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길들지 않은 ‘가능성’ 그 자체였다.
두 개의 이름표
사례 1. 지하 주차장 3층, 벤츠 E클래스
김현수. 52세, 대기업 부사장. 어깨 너비만큼 넓은 결혼 반지를 매일 돌려가며 만지던 습관.
- 전날 밤 아내가 한 말: “우리 딸 시댁 가서도 네 손 안 봐주면 어떡하니?”
- 그가 나에게 한 말: “이 반지, 네 손에 딱 맞네.”
그는 결혼 반지를 중지가 아닌 약지에 낀 채 나를 만났다. 손등에 새겨진 무게를 조금씩 떨어뜨리며, 그는 “이게 빈자리야”라고 속삭였다. 그 빈자리는 금속의 무게가 아니라, 26년간 쌓인 책임의 무게였다.
사례 2. 옥상 정원, 비닐하우스 뒤편
박준영. 52세, 외과 전문의. 수술복 주머니에 아내 사진 대신 나와 찍은 셀카를 넣고 다닌다. 아내는 “오늘도 늦네?”라는 문자만 보내고, 나는 “보고 싶어 죽겠다”라는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그 차이가 그의 피를 끓였다.
“아내는 나를 기다리지만, 너는 나를 필요로 해. 기다림과 필요는 완전히 다른 거야.”
그가 나를 뒤에서 안았을 때, 키 큰 토마토 plant pot 뒤로 숨었다. 토마토를 따 먹으려던 순간, 그는 내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 이걸 따면 우리 사진이 찍혀.
- 그럼?
- 찍히면 넌 증거가 되지.
그는 증거가 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부재’라는 것이 가진 힘을 믿었다. 아내의 전화를 끊고 나에게로 올 때, 그는 ‘없음’만큼 강력한 ‘있음’을 만들어냈다.
왜 우리는 금기의 공백에 끌리는가
결혼은 가장 잘 짜인 죄책감의 기계다. 1년마다 반지를 맞추며 점점 무거워지는 손가락, 한 명씩 늘어나는 가족 사진, 누적된 세금 공제.
그래서 누군가를 ‘비우는’ 행위는 마치 저항처럼 보인다. 내가 그의 빈자리를 채우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가 아니었다.
“나는 네가 가진 전부를 뺏고 싶은 게 아니야. 네가 아직 가지지 않은 가능성을 갖고 싶어.”
그 말을 들은 날, 나는 미친 듯이 침을 삼켰다.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52세 남자에게는 설렘이었고, 32세 나에게는 공포였다.
난 결국 그가 비운 자리를 메우다가, 내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
끝내지 못한 한 줄
지하 주차장의 불빛 아래, 그는 나를 꼭 껴안으며 한 가지를 물었다.
- 너도 누군가의 빈자리를 찾고 있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내 입술이 그의 목끝에 닿았을 때, 나는 깨달았다.
52세 그가 찾는 빈자리는 결혼이 아니었고, 내가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단 한 가지, 아무도 없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의 나였다.
그 순간에 나는 누구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