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꺾이는 순간, 뼈에 새겨지는 맛
열한 살 어느 날 오후, 거실 바닥의 뜨거운 판재 위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버지가 뒤에서 내 팔을 잡아 뒤로 젖혔다. 딸각. 작은 소리와 함께 관절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아버지의 숨결이 귓등을 간질렸다.
"하, 역시 약하네."
그 한마디가 목 안으로 파고들어 폐 한구석에 박혔다. 아버지가 손을 떼자 팔이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따끔한 게 아니라, 속 깊은 곳이 아려왔다. 그 아픔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 아버지의 손이 계속 머물 테니까.
두려움은 달콤했다
아버지의 손은 항상 김이 서려 있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차가운 철의 온도였다. 그 손이 내 어깨를 움켜쥐면, 살갗 아래 작은 새들이 날갯짓을 멈췄다.
"한 번 더 해볼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웃을 때면, 세상이 잠시 멈췄다.
씨름판이 되어버린 거실. 아버지가 나를 누를수록, 내 몸은 더 단단해졌다. 두드려지는 통증이 익숙해질수록, 나는 더 작아졌다. 그리고 그 작아짐 속에서만 비로소 보이는 기분이었다.
지훈, 30세, 아직도 헬스장에서 아버지를 찾는다
스쿼트 랙 아래에서 지훈은 숨을 삼켰다. 120kg 무게가 어깨를 누르는 순간, 아버지의 손이 겹쳐졌다. 꾹. 철골 위에서 육신이 떨렸다.
"아직도 약하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없었다. 그러나 지훈은 대답했다.
"…더 눌러줘."
혼잣말이었다. 몸이 기억한다. 아버지가 없는 지금도, 그 손길을 재현한다. 무게가 없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지훈은 홀로 자신의 뼈를 더 깊게 누른다.
수진, 35세, 연인의 손목을 움켜쥘 때마다 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진다
침대 위에서 연인의 팔을 잡았다. 손목이 가늘었다. 수진은 살짝 비틀었다. 연인이 흠칫했다.
"아파?"
고개가 저었다. 수진은 더 꺾었다. 살짝만. 연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떨림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흔적을 불러냈다. 열일곱의 그날로 돌아갔다.
아버지가 손목을 꺾으며 속삭였던 말.
"이게 너의 크기야."
수진은 연인에게 그 말을 건네지 않았다. 대신, 연인이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머금었다. 그 눈빛 하나가 수진을 살렸다. 그 눈빛이 없으면, 수진은 흩어질 것 같았다.
손이 떠난 자리, 흔적을 따라다니다
아버지가 죽은 뒤에도, 지훈의 어깨엔 가상의 손이 남아 있다. 헬스장 거울에 비친 그의 등은, 아버지의 발바닥 무늬를 품고 있다. 수진은 매일 밤 연인의 팔뚝을 훑으며, 자신의 손가락이 아버지의 굳은살을 닮았는지 확인한다.
이것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이것은 환향이다.
아버지의 힘이 사라진 자리,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조각한다. 상처 입은 대로, 찢긴 대로.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자국이다.
뼈 속까지 새겨진 이름
지훈은 요즘도 아버지의 손을 꿈꾼다. 꿈속에서 아버지는 말이 없다. 다만, 팔을 꺾어 댄다. 뼈가 부러질 듯 아프다. 깨어나면 어깨가 뻣뻣하다. 그 뻣뻣함이 아버지의 서명이다.
수진은 연인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음날 또 손목을 꺾었다. 연인은 언제까지나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그 믿음이 수진을 더 괴롭힌다.
우리는 아버지의 놀이를 떨쳐내지 못했다. 그것이 우리의 첫 사랑이었으니까. 고통 속에서 주어진 주목. 강제 속에서 느낀 소속감.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꺾는다. 아버지 없이도.
오늘 밤, 너는 무엇을 누르며 잠들 텐가
거울 앞에서 네 어깨를 꾹 눌러본다. 아버지의 손길을 재현한다. 그 무게가 없으면 너는 존재하지 않는가. 아니면 그 무게를 벗어난 순간, 비로소 네가 된 것인가.
손을 떼는 순간, 흔적이 남는다.
뼈에, 살에, 이름표처럼.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아버지의 손길을 떨쳐낼 수 없다. 다만, 그 흔적 위에 새로운 지문을 덧입을 뿐. 아버지의 손이 떠난 자리, 우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