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 한마디로 너는 영원히 내 몸에 화인이 됐다

‘둘 중 하나만 골라.’ 뱉어지는 순간, 세 사람의 숨결이 뒤엉킨다. 고통을 선택한 이들의 속살과 젖은 눈빛.

삼각관계선택의 폭력집착17금
그 한마디로 너는 영원히 내 몸에 화인이 됐다

“한 명만 골라. 지금, 당장.”

카페 ‘플로라’의 창가 자리. 오후 4시 11분, 여름 햇살이 유리 위를 미끄러져 내려왔다가 테이블 위로 번졌다. 지수의 손등에 뜨거운 무게가 내려앉았지만, 손끝은 오히려 시려왔다. 맞은편 민재의 검지가 잔을 어루만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부딪히는 도자기 소리, 살짝 얼어붙은 숨소리.

진우가 문을 밀어 열자, 스캔들처럼 달콤한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는 한 걸음 뒤에서 멈쳐, 지수와 민재를 번갈아 쳐다봤다. 눈빛이 스치는 순마다 가슴이 홀딱거렸다. 지수는 문득 진우의 손등에 새겨진 푸른 정맥이 떠올랐다. 그 혈관 아래로 흐르는 피가, 지난밤 자신의 허벅지 안쪽을 간질이던 손길과 같은 온도라는 걸 알고 있었다.

민재가 입을 열었다. 목끝이 울렁였다.

“지금, 네가 그 손을 잡으면—우리 둘 다 끝장이야. 돌아오지 않을 거야, 절대.”

한 마디, 한 침묵, 한 번의 떨림. 그 순간부터 누군가의 살이 뜨겵게 지워졌다.


속살을 파헤친 한 줄기 욕망

*‘한 명만 골라’*는 말은 본래 세 사람을 동시에 벼랑 끝으로 내던지는 주문이다. 고른 사람도, 고르지 못한 사람도, 고르게 한 사람도 한꺼번에 찢겨진다. 민재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고통스러운 말을 골랐다.

그는 사실 지수가 자신을 선택할 가능성을 **0%**라고 봤다. 하지만 패배를 그대로 삼키긴 싫었다. 패배를 폭발시켜서 패배 자체를 선물로 돌려주는 꼼수. 상대의 가슴에 ‘네가 날 죽였다’라는 글씨를 새기고 싶었다. 그래야 버림받은 자에서, 버림을 퍼부은 자로 바뀔 수 있었다. 사랑이 아니라 죄책감을 영원히 안기는 방법.

“선택받지 못할 거면, 선택받지 못함을 무기로 살아남는 거지.”
— 민재의 속마음


첫 번째 잔. 지수, 민재, 진우

2022년 8월, 한남동 와인바 ‘노을’.

지수는 진우의 손가락이 잔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 손가락이 열흘 전 자신의 브래지어 후크를 툭, 풀어버렸던 장면이 번쩍였다. 민재는 그 뒷모습을 힐끗, 또 힐끗 훔쳐봤다. 입안이 텁텁했다.

민재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진우 씨, 조금만 불편하게 해줘. 네가 지수 팔뚝만 스쳐도, 나는 미친X처럼 달려들 테니까. 그러면 지수는 네 편이 되겠지.”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날 밤 민재는 지하철 역 계단 위에서 두 사람을 지켜봤다. 진우가 지수의 손등을 살짝, 그러나 확실히 움켜쥐는 순간—민재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한마디만 남겼다.

“지금 그 손 놓지 마. 놓으면 나도 놓을게. 영원히.”

그리고 민재는 사라졌다. 지수는 눈앞에서 진우를 두고도 한 걸음도 떼지 못했다. 진우는 그대로 지하철을 탔다. 지수는 텅 빈 역사에 남아서, 버림받은 자버린 자 두 개의 몸을 한꺼번에 품었다.


두 번째 잔. 혜진, 도현, 세영

올해 초, 성수동 ‘옆집’ 카페.

혜진은 도현과 세영 사이에 끼어 앉아 있었다. 둘 다 5년 넘게 자신을 좋아했다고 했지만, 그건 반만 맞는 말이었다. 세영은 이미 연인이 있었고, 도현은 혜진을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이 끝내지 못한 삼각 위에 계속 머물렀다.

도현이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혜진아, 둘 다 원한다고? 그럼 둘 다 없앨게.”

혜진은 웃음으로 넘기려 했다. 하지만 도현은 진심이었다. 다음날 도현은 연락을 끊었고, 세영은 출장 명목으로 해외로 떠났다. 혜진은 혼자 남아서 ‘내가 뭘 잘못했을까’를 되풀이했다. 잘못은 없었다. 단지 누군가가 선택의 무게를 대신 짊어진 것뿐이었다.


고통을 사랑이라 착각하는 순간들

심리학자 롤프 룩스는 『비극적 선택』에서 말했다.

“고통은 사랑의 증표로 둔갑하기 쉽다. 고통이 없다면, 사랑도 없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때로 고통을 선택한다. 민재도 혜진도, 사실 떠나고 싶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다만 떠나면서도 떠나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상대의 가슴에 화인처럼 자신의 부재를 새겨두는 방식.

너는 나를 버렸다.
그러므로 너는 나를 사랑한다.
— 버림의 역설


마지막 한 모금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또 다른 삼각 위에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그 자리라면 어떨까.

  • “한 명만 골라.”라는 말을 건네는 쪽이라면, 그건 정말 사랑 때문인가. 아니면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의 집착과 두려움을 끝내 영원히 새기려는 것은 아닌가.

  • 그 말을 듣는 쪽이라면, 과연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아무도 선택하지 않고, 그 순간의 뜨거운 침묵을 평생 가슴에 지니고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고통의 양만이다.
고통을 줄일 수는 없어도, 누구에게 줄지는 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다시 우리 자신에게 돌아와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그 한마디, 그 손끝, 그 시선—모두가 사라져도 자국은 남는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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