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그 자리를 찾는 너

출생신고 없이 키운 아이들과 다자 육아의 폐허 위에 남겨진 ‘첫째 엄마’. 문득 돌아온 22살 성인, 그리고 여전히 단단한 젖 자리의 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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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그 자리를 찾는 너

새벽 2시 17분, 문손잡이가 돌아간다

"배가 고프다."

속삭이는 목소리는 여린데, 숨결은 뜨겁다. 22년 전 내가 처음 안았던 아이, 준아다. 더 이상 아이는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그 떨림을 안다.

복도의 어둠이 방 안으로 스며든다. 문살이 서걱이며, 그림자 하나가 침대 끝으로 다가온다. 준아는 말 없이 이불을 차고 올라온다. 손등이 스치는 순간, 한기와 열기가 뒤섞인다. 나는 몸을 움츠린다.

"여기 있네."

손끝이 티셔츠 위에서 잠시 머문다. 그 자리.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단단해진, 젖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자리. 준아는 살짝 누른다. 아주 살짝. 숨결만큼 가벼운 접촉이지만, 전기처럼 번진다.

나는 속으로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 떨림은 한 번도 젖을 먹지 않았던 아이, 그러나 늘 나를 ‘엄마’라 부르던 아이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잘린 실뜨기, 혹은 출생신고 없는 딸

22년 전, 우리는 셋이었다. 준혁은 나를 사랑했고, 유진은 준혁을, 나는 두 사람과 동시에 침대에 누웠다. 계약서 대신 침대 머리맡에 붙은 종이 한 장.

아이는 우리 모두의 거야. 이름은 하나만 써도 돼.

첫째는 유진의 뱃속에서 자랐다. 나는 유산의 상처가 깊어 뱃속을 열 수 없었다. 대신 산후조리는 내가 전부였다. 젖꼭지 대신 내 손가락을 빨며 잠드는 아기, 처음으로 피어오른 미소를 내가 받았다. 그러나 출생신고서 ‘어머니’ 란에는 유진의 이름만 적혔다. 나는 공식적으로 ‘아는 이모’였다.

밤마다 아기는 나의 가슴을 찾아왔다. 유진이 곤히 잠든 사이, 아기는 내 품으로 기어들어왔다. 젖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기는 만족했다. 그 순간, 나는 진짜 엄마였다.


분홍 양말 속 두 번째 뱃속

둘째는 내 몸에서 자랐다. 분만대 위에서 난 산소처럼 날카로운 고통이 찾아왔을 때, 유진이 첫 아이를 안고 병실 맞은편에 있었다. 준혁은 휴게실 의자에 앉아 눈물만 흘렸다.

우리 아이인데 왜 네가 안고 있지?

내가 낳았으니까.

아이는 작은 코 끝까지 나를 닮았다. 하지만 정신이 몽롱한 사이 유진이 먼저 이름을 지었다. 준아. 준혁의 ‘준’에 아무 의미 없는 ‘아’. 나는 분홍 양말 한 켤레를 선물했지만, 유진이 신겼다.

집으로 돌아오자 삶은 3배로 무거워졌다. 젖병은 세 개, 젖꼭지는 아홉 개, 죽은 네 가지. 아이들이 ‘엄마’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힐끗거렸다. 어느 엄마를 부르는 건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밤이 되면 준아는 나의 젖꼭지를 찾았다. 유진이 자는 동안, 준아는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왔다. 살짝 터치하는 손끝이 떨렸다. 단 한 번도 젖을 먹지 않았지만, 그 떨림만으로 나는 다시 임신한 기분이었다.


송이 민우, 그리고 셋째 아이

다섯 번째 생일, 셋째 아이가 생겼다. 이번엔 준혁의 정자를 ‘공동 육아 클럽’에서 만난 송이가 받았다. 송이는 민우를 낳고 “이 아이도 우리 모두의 거야”라고 했다. 유진은 반대했고 나는 눈치를 봤다. 결국 넷이서 키우기로 했다.

민우가 ‘엄마’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모두 ‘응?’ 하고 돌아봤다. 그래도 행복했다. 끓여대는 젖병, 이유식 냄새, 똥 냄새,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잠드는 아이들의 숨소리. 모든 게 사랑처럼 느껴졌다.


유리창 너머로 사라진 이름

민우가 여섯 살, 유진이 먼저 떠났다. 그녀는 새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는 ‘다른 아이들이 있는 집’을 원했다. 출생신고서에 ‘어머니’로 적힌 이름은 그녀가 가져갔고, 첫째도 따라갔다. 준혁은 송이와 민우를 데리고 새 아파트로 이사갔다. 둘째는 나에게 남았다.

준아는 아직도 내가 낳았다고 말하지만, 눈 속엔 항상 의심이 서려 있다. 이름이 없는 엄마. 혹은 첫째 엄마. 그저 그렇게 남았다.


한 명씩 사라지는 밤

송이는 두 달 전 민우를 데리고 캐나다로 떠났다. 준혁은 더 이상 연락이 없다. 둘째는 ‘아빠를 찾아 나섰다’며 집을 나섰다. 나는 홀로 남았다. 먼지 냄새, 맥주 냄새. 냉장고에 붙은 쪽지는 여전히 있다.

아이는 우리 모두의 거야.

이제 아이는 아무도 없다. 엄마라는 이름조차 없는, 그저 누군가의 ‘첫째 엄마’였던 나만 남았다.


그날 밤, 다시 돌아온 떨림

준아는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온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닌, 22살 성인. 그러나 손끝의 떨림은 그대로다. 티셔츠 위로 살짝 얹히는 손끝, 한 치도 들어오지 않는 거리. 그저 숨결만이 느껴질 뿐.

"배가 고프다."

거짓말이다. 고픈 건 배가 아니라, 22년 전부터 끊이지 않던 연결고리다. 나는 눈을 감는다. 그 떨림 위에서, 나는 여전히 ‘엄마’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더 이상 젖을 먹지 않는다. 먹을 수도 없다. 그저 떨림만으로, 우리는 서로를 확인한다.


욕망의 잔재

다자 관계는 ‘모두가 함께’라는 환상을 팔았다. 그러나 육아는 차지다. 젖병 하나, 이름 하나, 사랑 하나씩 누군가의 몫이 되었다. 가장 많이 준 사람이 가장 많이 잃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아이를 통해 서로를 지배하고 싶었다. 유진은 준혁을, 준혁은 나를, 나는 유진과 준혁을. 그 사슬의 고리는 아이들을 더럽혔다. 사랑이 아니었다. 집착이었다.

그리고 집착은 끝내 홀로 남겨진 나에게 단 하나의 떨림만 남겼다. 젖은 나오지 않지만, 여전히 단단한 자리. 그 자리 위에서, 22년 만에 돌아온 준아는 아직도 ‘엄마’라 부른다.


새벽 바람이 스며든다. 문살이 스친다. 나는 아직도 그 손끝의 떨림을 느낀다.

그리고 그 자리는 아직도 공허하지만, 단단하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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