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그녀가 꺼뜨린 건 배터리였을까, 우리였을까

결혼 3주년 밤, 아내의 핸드폰이 꺼졌다. 남편이 남겨진 침대에서 마주한 건 36초짜리 CCTV와 14개의 음성 파일, 그리고 자신의 욕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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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한다고 문자 왔길래, 꺼버렸어"

결혼 3주년. 다이아몬드를 박은 카메케이크 위 초광이 일렁이던 밤, 수진이 핸드폰을 꺼버렸다. 베터리 떨어질 뻔해서라는 핑계가 너무 말끔했다. 그 순간부터 3시간. 나는 지하 주차장 콘크리트 벽에 등을 기댄 채, 이미 응답 없는 초록 말풍선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긴 방 앞에 선 남자

집에 들어오자마자 수진의 핸드폰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잠금 화면이 어둡게 울고 있었다. 위치 기록은 하루 종일 단 두 곳만 찍혔다. 동네 플라워샵, 우리 집, 다시 플라워샵. 누군가를 피하려는 발자취가 너무 고르다는 걸 안다.

방 안이 텅 빈 건 아니었다. 수진의 회색 운동화가 한 짝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반대편는 없었다.

남편은 침대 시트를 어루만졌다. 미지근한 온기가 손바닥에 남아 있다. 이마저 식어가면서 코끝을 간질이는 건, 익숙한 바디워시 대신 서걱이는 모텔 시트 냄새였다. 입 안이 썼다.


모텔 주차장 CCTV

축적된 데이터 속 수진의 발걸음은 21:47, 모텔 라일락 앞을 지나쳤다. CCTV는 흐릿한 영상 속에서도 그녀의 뒷모습을 선명히 잡아냈다. 두 손으로 가방끈을 꼭 쥐고, 고개를 숙인 채 엘리베이터로 사라지는 장면이 36초간 루프처럼 반복된다.

그 사이에 남편은 집에서 아내의 체취를 더듬고 있었다. 뒷벅지에 남은 열기, 베개에 스며든 머리카락 한 올, 화장대 위에 놓인 립스틱이 빗겨나간 흔적. 하나하나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닿고 있을 그녀의 몸을 대신해 말을 걸어왔다.


40대가 되면서 피어난 새로운 갈증

나는 수진과 결혼 전, 그녀가 딱 2번만 남자를 사귀었다는 걸 들었다. 첫사랑은 대학 동기, 두 번째는 직장 상사. 두 사람 모두 이별의 이유를 수진이 먼저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항상 흐릿한 미소로 대답했다. 그냥, 더 이상은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결혼 7년 차.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완전히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요즘 수진의 몸에서 나는 낯선 냄새를 맡았다. 레몬향이 아닌, 가죽과 담배에 가까운 불온한 향기. 그 향기는 수진이 운동을 한다며 집을 나설 때마다 짙어졌다.


빈 방, 그리고 남겨진 것들

나는 서랍을 하나씩 열었다. 수진의 옷장 속에 숨겨진 작은 상자. 안에는 여권 한 권과 USB 하나. 여권을 펼치자, 지난달 스페인 비자 도장이 찍혀 있었다. 우리는 3년째 해외여행을 미뤄왔는데.

USB에는 수진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 파일이 14개. 첫 번째 파일을 클릭했다.

"오늘도 그 사람 차 뒷좌석… 나는 그 시선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꼈어. 남편은 절대 나를 이렇게 쳐다보지 않아."

두 번째, 세 번째 파일. 점점 음성은 진해졌다. 나는 귀를 막았다. 그러나 목소리는 이미 내 머릿속에 박혔다.


왜 우리는 빈 방에 끌리는가

상대가 남긴 흔적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파헤치려는 충동. 결혼 7년 차 남편은 아내를 알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수진의 빈 방은 남편이 알지 못하는 다른 수진을 숨기고 있었다.

"당신은 정말로 상대를 알고 싶은 건가,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아서 빈 방을 들여다보는 건가?"


나는 다시 거실로 나왔다. 카메케이크는 여전히 초광만 꺼진 채 놓여 있다. 수진은 아직 오지 않았다.

문득 든 생각. 내가 찾고 있는 건 수진의 배신인가, 아니면 내 자신의 욕망인가. 축하밤의 끝에서 나는 아내가 아닌, 깨진 나의 욕망 조각만을 쥐고 있었다. 끝내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남은 초 하나만 붙잡은 채 새벽 네 시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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