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네 색이 아니잖아"
"베개를 뒤집는 순간, 떨어진 한 올의 머리카락이 발밑에 내려앉았다. 길이는 손목을 휘감을 만큼 길고, 색은 우리 침대에 어울리지 않는 갈색이었다."
주형은 멍하니 침대를 내려다봤다. 11년 동안 매일같이 함께 누운 침대였다. 그런데 지금 이곳엔 생경한 머리카락, 낯선 향수 냄새, 그리고 누군가의 체취가 배어 있었다.
그날 밤 나는 눈을 뜨고 누웠다. 아내가 곁으로 들어올 시간이 되었지만, 이불은 차가웠다.
욕망의 반전
결혼 11년 차, 사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한다.
‘혹시… 혹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욕망을 받고 있을까?’
주형은 그 상상을, 냉정하게도, 남편이라는 직책 대신 ‘관찰자’로서 받아들이고 있었다. 증거와 마주한 순간, 분노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궁금증이었다.
그는 어떤 남자일까? 아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할까? 우리 부부는 언제부터 금이 갔을까?
욕망의 핵심은 배신이 아니었다. **‘내가 모르는 그녀’**를 목격하고 싶은, 독한 호기심이었다.
실제 같은 두 이야기
1. 민서의 목걸이
민서는 35세, 11년 차 주부. 남편이 지방 출장 간 사흘, 그녀는 옛 애인 ‘도현’을 다시 만났다. 처음엔 커피 한 잔이었다. 두 번째는 술 두 잔이었다. 세 번째 만남은, 그녀가 결혼반지를 벗어놓은 호텔이었다.
“그날 밤 나는 침대 옆 탁자에 반지를 올려놓았어. 반짝이는 게 싫었거든. 그 순간 처음으로 ‘나도 누군가의 욕망이 될 수 있구나’를 느꼈어.”
돌아온 남편은 그녀의 목걸이 고리가 뒤틀린 걸 눈치챘다. 그날 이후 집 안의 모든 사물이 증거가 되었다. 민서는 자신도 모르게 계속 뒷정리를 했다. 머리카락은 물론, 침대보까지 바꿨다.
2. 승준의 냄새
승준은 39세, 한 아이의 아빠. 부부는 이미 2년째 관계를 멈춰 있었다. 아내 수진이 ‘건강검진’ 간 날, 그는 우연히 수진의 차 안에 사탕 봉지를 발견했다. 수진은 평생 단 것을 싫어했는데, 봉지엔 딸기맛 사탕이 있었다.
그날 저녁, 승준은 수진의 머릿결에서 딸기향이 난다는 걸 깨달았다. 그 향기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 알고 있었어. 수진이가 누군가와 있는 걸.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했지. 왜냐면… 내가 먼저 눈을 돌렸으니까.”
우리는 왜 끌리는가
증거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두 개의 자아로 갈라진다.
하나는 ‘피해자’. 다른 하나는 ‘목격자’.
그리고 목격자는 어쩔 수 없이 상상한다. 침대 위에서 벌어진 낯선 신체의 리듬, 누군가 내가 모르는 얼굴로 웃으며 아내를 만지는 장면.
그 상상이야말로 진짜 금기다.
증거는 추궁용이 아니라, **‘내가 없는 동안의 그녀’**라는 환영을 완성하는 코스프레용 소품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당신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증거를 찾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이미 발견했지만 눈감아주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