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화장실에 간 3분
'너희 언제 해?'
엄마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속삭였다. 식탁 위 김치찌개 김이 서서히 식었다. 지혜는 답이 없었다. 8년. 그 기간이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목덜미를 조르고 있었다. 손가락에 끼워준 반지는 2년 차에 받았지만, 그건 그저 '커플링'이었다. 결혼은 아니었다.
화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그 3분 동안 거실은 침묵의 메아리가 울렸다. 지혜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8년차 #드디어청혼 #예비신부. 동창 혜진의 손에 낀 다이아몬드가 화면을 찌르듯 빛났다. 좋아요를 누르지 못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미 늦었다’는 사막 한가운데
나는 벌써 33이다. 그는 35. 우리는 늙어가고 있다. 그런데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아’라는 거짓말 대신, ‘당신은 이미 노초’라고.
지혜는 매일 밤 위태롭게 계산한다. 1년 뒤 결혼 준비. 2년 뒤 아이. 35세 출산은 ‘고위험’이다. 산부인과 상담 후 눈가가 붉어진 동생 얼굴이 떠오른다. 아니, 아직이다. 아직 아니다. 그런데 왜 가슴 한쪽이 타닥타닥 갈라질까.
첫 번째 흔적: 유리창에 새긴 날짜들
"나도 모르게... 계산을 해."
유리거울에 매일매일 혼잣말을 한다. 2016년 5월 2일 첫키스. 2017년 12월 24일 첫동거. 2019년 8월 15일 첫 부모님 상견례. 그리고 2024년... 아무것도 없다.
"그래도 기다리는 게 맞지?" 지혜는 혼자 묻는다. "8년이면 충분하잖아."
거울 속 여자는 피부가 약간 누렇게 들어와 있다. 눈가는 가늘어졌다. 목선이 흐려진 것 같다. 그는 아직 모른다. 지혜가 매일 밤 ‘예비신부’라는 검색어를 37번씩 지웠다는 걸. 29세부터 33세까지. 비밀 쇼핑몰에서 웨딩드레스를 12벌이나 질렀다는 걸.
두 번째 흔적: ‘민준’과 ‘지영’의 침묵
민준과 지영은 9년째였다. 작년 크리스마스, 지영은 드디어 물었다.
우리, 언제쯤...?
민준은 침대 끝에 앉아 담배를 꺼냈다.
일단 일이나 잘하자.
그게... 결혼이랑 무슨...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3개월 뒤, 지영은 혼자 산부인과를 찾았다. 난소기능검사. FSH 수치가 높다고 했다. 아이를 원한다면 서둘러야 한다. 그날 밤 지영은 민준이 자는 사이 가방을 싸고 나왔다.
지금 지영은 혼자 산다. 침대 맡에는 아직도 민준의 니트가 있다. 지퍼를 못 잠근 채 누워 있다.
왜 우리는 이 끝없는 기다림에 중독되는가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말했다. ‘지속적 기대’는 마약보다 강력하다고. 확률 30%의 보상이 70%의 확실한 보상보다 뇌를 자극한다. 우리는 ‘곧’이라는 말에 홀린다.
곧이면 얼마나 곧인가. 8년은 충분히 긴가. 아니면 16년이 되어야 포기할까.
미하엘 엔데의 <모모> 속 회색紳士들이 말했다. ‘시간을 절약하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소용없다’고. 그런데도 우리는 기다린다. 왜냐하면 기다리는 동안 ‘아직’이라는 말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아직 가능성이 있다. 아직 시간이 있다. 아직 나는 노초가 아니다.
침묵의 뱃사공
지혜는 오늘도 불안하다. 어젯밤 꿈에서 그녀는 90년 된 자신을 보았다. 침대 곁에 앉아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하지만 손에는 꽃다발이 아니라, 무덤에서 줍다 온 낙엽이 들려 있었다.
마지막 질문
당신도 지금 이 순간, 누군가를 기다리며 조용히 허물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언제까지, 그를 기다리느라 너 자신을 늙혀갈 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