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만 하면 돼."
그 말이 탁자 위에 떨어질 때, 지수는 막 92일이 된 아이를 가슴에 꾹 눌러 안았다. 아기는 힘없이 웃었다. 유축봉을 채운 뒤 꿀꺽삼킨 젖가루 냄새가 뒤섞인 방 안, 그 냄새마저 낯설었다. 남편 민석은 이혼 서류를 내려놓고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물소리는 안 나왔다. 그가 거울 속 자신을 보고 있으리라는 걸, 지수는 알았다.
고장 난 젖꼭지
내 몸은 육아 기계가 됐다.
출산 후 처음 100일, 지수는 브래지어를 벗은 적이 없었다. 새벽 두 시, 다섯 시, 아침 일곱 시. 셋째날부터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젖꼭지가 아기 입에 닿을 때마다 전기가 올라오듯 느껴지는 건 분명 젖은데도 가슴은 공허했다. 갓난아기는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지수는 눈을 마주치기가 두려웠다. 아기는 그저 배를 채우려 애쓰는 것뿐인데도.
민석은 아기가 울면 등을 돌렸다. 처음 두 주는 눈치를 봤다. 그러다 지수가 젖을 물리고 있으면 그는 옷장 문을 열어 옷을 꺼내 입더니, 아침 일곱 시에 퇴근했다. "야근이다"라는 문자 한 줄이 전부였다. 민석 역시 두려웠을까. 아기는 그의 눈에서도 자신의 무능함을 비추고 있었을 테니.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젖 냄새
사례 1. 다혜 – 29세, 아기 87일 차
나는 모유 수유 중 맥주 한 캔도 못 마신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외로웠다. 남편은 야식으로 치킨 시켜 놓고 맥주를 뚜껑 따면서 "맛있다"라고 말했다. 젖꼭지가 아프다고 하니까, 너무 조심하느냐고. 그날 나는 혼자 욕실에서 30분 동안 손으로 짜고 있었다. 젖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보다 내가 울지 않으려고 삼키는 소리가 더 컸다.
사례 2. 예린 – 34세, 아기 95일 차
남편이 처음으로 아기 목욕을 시키겠다고 했는데, 아기가 미끄러지면서 머리가 살짝 부딪혔다. 소리 지르며 달려가서 안았는데, 남편은 "그만해, 더 놀라게"라고 했다. 그날부터는 아기를 안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과잉보호'라고 수군댔다. 산후우울증 진단서를 들고 가면 "그게 별게 아니라"고. 이혼은 그때부터 준비됐다. 아기가 100일이 되기 전에.
아기 앞에서는 무너져선 안 된다
산후 100일. 사회는 '회복'이라는 단어를 붙인다. 하지만 그건 복귀가 아니라 단절이다. 육아휴직 끝나면 일터로, 아기는 어린이집으로. 지수는 거울 속에 자신이 ‘아기의 집’만 남은 사람처럼 보였다. 민석은 매일 새벽 두 시에 들어와 아침 여덟 시에 출근했다. 아기는 그가 들어오면 웃는 법을 잊었다. 민석은 그것마저도 '아이가 엄마에게만 의존해서'라고 돌렸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다.
민석은 사내 동아리에서 “아내가 나를 못 봐줘서”라고 술 한 잔 기울이며 말했을 테다. 지수는 엄마 카페에서 “남편이 심리적으로 도망쳤다”라고 익명으로 글을 올렸을 것이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를 해체하는 말들이 쌓였다. 그리고 92일 만에 서류가 내려앉았다.
왜 이토록 빨리 타락하는가
우리가 원한 건 사랑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산후 이혼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사라진 시간'을 마주할 때 벌어지는 붕괴다. 아기는 24시간 요구하고, 부모는 0시간 자신을 돌리며 100일을 보낸다. 그 틈에서 욕망은 '잠'이라는 이름의 최소한의 욕구로 환원된다. 섹스는 커녕 손을 잡는 것조차 위협이 된다. 아기가 잠든 30분, 서로의 숨소리조차 방해가 된다.
우리는 사랑받기를 기대했지만, 돌봄받기를 그만두지 못했다. 그리고 아기는 우리가 돌봐야 할 대상이면서 동시에 우리를 감시하는 증거였다. 눈앞에서 아기가 성장할수록, 우리는 실패한 부모라는 낙인이 선명해졌다.
서류 위에 아기가 누워 있다
지수는 펜을 들었다. 민석은 벌써 서명을 끝냈다. 아기는 서류 위에 누워서 발을 허공에서 킥킥거렸다. 이 작은 발이 앞으로 엄마 아빠의 서류를 넘기며 자라겠지. 그때 지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이혼 서류에도 아기는 엄마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헤어지려고 서명하는 순간에도 아기는 우리 사이에 떨어져 있다.
당신은 그 서류를 들고 있을 때, 아기의 눈을 마주치고 싶은가? 아니면 영원히 피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