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지하주차장 불빛 아래, 죽은 지수가 웃고 있었다

장례식에서도 눈물 한 방울 없이 그녀의 손만 꼭 잡던 남자. 그가 숨긴 충격적인 진실과 우리가 이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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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차장 불빛 아래, 죽은 지수가 웃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유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수가 죽었어. 오늘 아침에.”
침대 시트를 움켜쥐던 손에 식은땀이 찼다. 새벽 두 시까지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하며 웃던 지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는데, 그게 끝이라니.

나는 뜬금없이 웃음을 삼켰다.
왜 기쁜지도 모르겠다.


검은 물결 속, 빨간 입술

장례식장 입구에서 유진이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숨을 꾹 참았다. 눈이 부어 있고 머리카락이 헝클어진 채 그녀는 내게 다가왔다.
“감기 걸릴까 봐. 손 좀 잡아줄래?”

검은색 정장 위로 새하얀 손이 내밀어졌다. 손등에 퍼진 푸른 정맥이 마치 물에 젖은 지도처럼 흐릿했다. 나는 그 손을 꼭 잡았다.

유진이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대신 손에 힘을 주었다.

지수가 죽었다고? 그래서 네가 길이 열렸다는 거지.

장례식장 안은 군중으로 들끓었다. 향 연기 속에서 유진이의 전 남자친구 향기를 떠올리는 나를 발견했다. 어둠 속에서도 반짝이는 입술이 있었다. 그건 유진이의 것이었고, 동시에 지수가 지켜왔던 ‘금지구역’의 입술이었다.


지하철 2호선, 그리고 뒤틀린 기억

지수가 죽기 일주일 전. 나는 우연히 지하철에서 유진이의 전 남친을 마주쳤다. 그는 코트 깊숙이 얼굴을 묻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내 향기를 기억하더라고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눈빛이 흐릿했다.
“아무리 씻어도 그 향기가 안 지워져요. 유진이의 몸에선 아직도 내가 머무는 것 같아서.”

순간 나는 지수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녀도 똑같은 향기를 맡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유진이의 과거를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지하철이 터널에 들어가는 순간,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웃고 있었다.
이제 그 파수꾼은 없어.


장례식장의 속삭임들

“저 사람이 지수 남자친구였대.”
“아니야, 지수한테는 남자친구 없었어.”
“그럼 누구지?”

벽쪽에 기댄 채 나는 그 말들을 들었다. 그들이 나를 지수의 연인이라고 믿도록 내버려 두었다. 오해를 즐기는 순간, 나는 누군가의 죽음이 나에게 주는 선물을 만지작거렸다.

유진이가 다가왔다.
“고마워. 지수가 좋아했을 거야. 네가 와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모르지. 지수가 좋아했던 건 너의 과거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지하주차장, 2층 B구역

지수가 죽은 지 한 달, 밤 열한 시. 나와 유진이는 그녀 아파트 지하주차장 2층 B구역에 서 있었다. 차 한 대 없는 콘크리트 공간에 형광등이 죽은 듯 깜박였다.

유진이가 말했다.
“사실 전날, 지수가 나한테 물었어. 너랑 나 사이가 진짜냐고.”

나는 주머니 속 손을 꼭 쥐었다.

“나는 그때 진짜라고 했어. 근데 지수는 웃으며 말하더라.
‘그럼 너는 네 과거를 다 지웠구나. 축하해.’”

공기가 차가워졌다. 유진이가 한 걸음 다가섰다. 발뒤꿈치가 콘크리트를 긁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나도 이제 그만 잊고 싶어.”

그녀는 내게 몸을 기댔다. 차가운 기둥과 차가운 어깨 사이에 끼인 순간, 나는 지수의 마지막 표정을 떠올렸다.

알고 있었을까. 자신의 죽음이 이 둘 사이를 이끌 거라는 걸.

형광등이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유진이의 숨결이 내 귀에 닿았다.
“여기서만은 우리 둘뿐이야.”

콘크리트 냄새와 차 엔진 냄새가 섞인 공기 속에서, 나는 문득 지수를 떠올렸다. 그녀는 이곳에서도 우리를 보고 있을까.


죽음이 남긴 빈자리

식장에서 흘러나오던 자장가처럼, 유진이의 숨결이 내게 스며들었다.
지수는 없다. 그래서 길이 열렸다.

지하주차장 천장에 매달린 CCTV가 천천히 우리를 비추었다. 붉은 불빛이 번쩍였다.

우리는 애도한다. 하지만 그 애도 속에 누군가의 죽음이 나에게 가져다준 이익도 떠올린다. 이게 인간이다.

차가 차고로 들어오는 엔진음이 가까워졌다. 우리는 서로를 놓지 않았다.

지수는 죽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켜온 금지구역은 살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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