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랑 같이 자도 될까?"
밤 열두 시 반. 민서의 카톡이 울렸을 때 나는 아직 깨어 있었다.
'오늘 너랑 자고 가도 돼? 우리 집에 엄마 친구들 와서 시끄러워'
술 마신 얼굴로 대답 대신 전화를 걸었다. "여기 어디냐" 민서는 웃었다. 숨소리가 귀에 닿았다. 그리고 30분 후, 현관문 앞에 우리는 맥주 두 캔을 들고 서 있었다.
살아 있는 슬픈 짐승
민서는 내가 가장 오래 알고 있는 여자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의 연애사를 꿰고 있는 유일한 사람. 그래서 이상했다. 피부가 닿는 순간마다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며 맥주를 마신다. 팔이 스친다. 발이 스친다. 민서가 웃으며 "야, 너 발 차갑다" 하고 내 발을 자기 다리 사이에 끼운다.
내 심장은 너무 크게 뛰었다. 차라리 들켰으면 좋았을까.
2주 전, 지하 주차장
지하 주차장 불이 꺼진 시간. 민서 차 뒷좌석에서 둘이 숨을 죽였다.
현재 남자친구가 전화를 했던 건 11시 47분이었다. 민서는 받지 않았다. 그 전화가 오기 30분 전, 우린 차 안에서 누가 먼저 키스했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입을 맞췄다.
'왜냐고? 그냥... 느껴졌어. 안 하면 죽을 것 같았다.'
연애사의 꼬리를 밟는 방법
아무도 알지 못했다. 민서는 여전히 남자친구와 데이트하고, 나는 여전히 그녀의 연애고민을 들어준다. 그녀가 "오늘은 진짜 헤어질 뻔했어" 하며 눈물 짓는 걸 보며, 나는 그 눈물을 닦아주면서도 동시에 그 눈물의 이유가 내가 아니라는 게 미쳐버릴 것 같았다.
점심에 만나 점심 먹고, 영화 보고, 쇼핑하고. 우리는 늘 그랬다. 하지만 손이 스칠 때마다, 우리는 눈치를 본다.
그 눈치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부끄러움인가, 아니면 더 큰 욕망을 숨기는 연기였을까.
숨겨진 카메라 속의 우리
어젯밤, 민서는 또 왔다. "오늘도 자고 갈게, 친구들이랑 싸웠어" 라고 했지만 둘 다 알았다. 그건 핑계였다.
침대 위에서 우리는 티비를 봤지만 아무것도 안 들어왔다. 민서가 내 옆으로 와서 팔짱을 끼었다. 손가락이 서로를 찾았다. 이번엔 눈치 보지 않았다.
이건 잘못된 거야. 그런데 이 잘못된 것이 너무 달콤해서 끝내지 못했어.
우리가 왜 서로를 탐하는가
어린 시절, 민서는 내가 처음 접한 '가까운 타자'였다. 내가 처음으로 공감했던, 내가 처음으로 이해했다고 믿었던 존재. 그리고 그건 언젠가부터 욕망으로 변했다.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완벽히 아는데, 그 과거는 우리가 지금까지 수없이 계산한 사랑의 실수를 담고 있다. 그래서 더 끌린다. '이번엔 다를 거야' 라는 착각. 그 착각이 우리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누군가를 제일 잘 아는 순간, 그 사람을 제일 못 알아보는 순간이 되는 법.
5월 3일, 새벽 3시 17분
오늘도 민서는 잠들었다. 나는 잠들지 못하고, 그녀의 숨소리를 듣는다.
나는 왜 이것을 멈추지 못하는가. 그리고 민서는 왜 매일 밤 이곳으로 오는가.
당신은 그 경계선을 지금도 지키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선 너머의 떨림을 느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