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바닥, 핑크 물감처럼 퍼진 눈물
“엄마, 나 진짜 죽고 싶어.”
여덟 살 수은이의 목소리는 새까만 욕실 타일 위로 낙엽처럼 떨어졌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첫 0.1초, 뇌 한구석이 지글거렸다. ‘죽으면 안 돼, 네가 죽으면 나도…’ 아니, 잠깐. 내가 떠올린 건 딸의 죽음이 아니었다. **‘내가 구원받을 기회’**였다.
날카로운 이빨에 찍힌 듯한 손목 흉터 위에 핑크색 요정자가 눌러붙었다. 장난감 칼 한 자루가, 다정한 미소를 지은 채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저건 내가 아니야, 저건…’ 내가 딸에게 선물한 칼이었다. 그걸로 무언가를 그어본 건 누구였을까. 손끝이 저릿했다.
연보라색 정장, 그리고 나의 첫 오르가즘
문이 열리자 연보라색 정장 차림의 사회복지사 민지가 들어왔다. “아이 안전을 위해 왔습니다.” 그녀가 미소 지을 때, 나는 가슴 한편이 쨍―하고 열렸다. 누군가가 마침내 *‘당신은 나쁜 엄마다’*라고 선언해 주는 순간이었다.
딸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나는 딸을 구원자의 피난처로 끌고 가고 싶었다.
민지가 딸의 손목을 만지며 “누가 그러라고 했어?”라고 묻는 순간,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 질문이 나를 정화하는 뜨거운 물처럼 느껴졌다. 나는 역할이 생겼다. ‘피해자의 엄마’, ‘무책임한 부모 속의 선한 한 명’. 그 순간, 수은이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 내 목뒤로 스며들었다. 짜릿했다.
임시보호소, 유리창 너머의 네 번째 벽
48시간 만에 딸은 임시보호소 침대에 누워 있었다. 나는 감시카메라 아래 1미터 거리두기를 하며 딸을 내려다봤다. 수은이가 속삭였다.
“엄마, 여기서도 죽고 싶어.”
그 말이, 내 안의 검은 액체를 더 깊이 휘저었다. ‘그래, 여기서도 네가 내 품에 돌아오면 돼.’
민지가 노트북을 열었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방치했나요?”
종혁이 대답했다. “둘 다 회사라…”
펜이 쓱쓱. ‘방치 가능성’이라는 문장이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였다. 나는 딸의 뺨 위로 떨어지는 나의 눈물을 보았다. ‘내가 딸을 잃는 대신, 딸은 나를 얻는다.’ 뒤틀린 계산. 딸이 방 한가운데에 놓인 장난감 칼을 쳐다보았다. 그 칼이 빛났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두 번째 방, 어둠 속의 촉수
수은이의 새 집은 창문이 없었다. 문마다 숫자가 붙어 있었다. ‘4’, ‘7’, ‘9’. 나는 면회실 유리 너머로 딸의 손을 맴돌렸다.
“엄마, 만져도 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규정 위배. 그 순간, 내 몸 한구석이 화끈거렸다. ‘너를 만질 수 없어서 좋아. 그래야 너는 계속 내가 필요해.’ 사회복지사가 물었다. “엄마가 뽀뽀하면 기분이 좋아?” 수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었다. 우리는 알았다. 그러나 나는 그 거짓말을 사랑했다. 딸의 거짓이 나를 살린다.
욕망의 정체: 구원자의 권리
심리상담실에서 만난 아빠가 말했다.
“우린 아이가 죽을까봐 무서워서 전화했는데, 전화한 순간 아이를 뺏겼어요.”
그는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그의 눈물은 나의 흥분을 돋웠다. ‘당신은 실패한 부모, 나는 아직 구원받을 수 있어.’
나는 차가운 벽에 이마를 붙였다. *‘내가 잡을 수 없는 것이 딸이 아니라, 딸이 내게 속삭이는 거짓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나는 불안해”라고 말할 때마다 나는 젖은 천으로 감싸인 듯 따뜻해졌다.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숨겨진 소유욕이었다. 나는 딸의 고통을 원했다. 고통이 없으면 나는 필요 없어진다.
이웃집 엄마의 속삭임
옆집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애 손목에 흉터 있어요. 혹시… 신고해야 하나요?”
나는 그녀의 눈 속에 잠재운 욕망의 불씨를 보았다. ‘당신도 알잖아. 신고하면 당신이 구원자가 돼.’ 나는 말했다. “전화하면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그녀는 눈을 흔들었다. 이미 한 번 CPS를 불러 2년 동안 이웅과 갈등을 겪은 아내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 욕망을 숨기고 있었다.
들리지 않는 외침, 그리고 나의 환희
수은이는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심리 평가’를 받는다. 사회복지사는 항상 묻는다.
“엄마 아빠랑 있을 때 불안한가요?”
딸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열쇠다. 나는 딸이 거짓말을 하는 순간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네가 불안하다고 말할 때, 나는 다시 엄마가 돼.’
마지막 질문, 그리고 나의 대답
만약 당신의 아이가 오늘 밤 “죽고 싶다”고 속삭인다면, 여전히 911을 누를 수 있겠는가?
나는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다.
“나는 너를 구하려다 너를 잃었다. 그럼에도 난 그 전화를 또 누를까?”
문 앞에 서 있는 CPS 요원의 발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이제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피부에 전기가 올라오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