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심리연구소 사랑과 연애의 심리학

붉은 흔적, 그날 이후 침대가 무덤이 됐다

침대 한복판에 남은 붉은 흔적 하나. 7년 차 부부가 서로의 더러움을 냄새 맡으며 침묵으로 지켜온 불편한 약속, 그리고 오늘 밤 당신의 침대 위엔 무엇이 놓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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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흔적, 그날 이후 침대가 무덤이 됐다

그것이 침대 위에 놓인 순간

김현수는 눈을 떴다. 새벽 2시 17분. 아내가 자리에 없다. 화장실 문 아래로 흘러나오는 빛이 일렁인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이불을 걷었다.

침대 한복판. 흰 시트 위에, 붉은 흔적 하나.

색은 이미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잿빛 새벽빛 아래에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또렷했다. 냄새는 방 전체를 감쌌다. 유기된 장기처럼.

이건 뭘까. 나와의 전쟁 선포인가. 아니면 그냥 귀찮아서?

아내는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물 소리는 나지 않는다.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중이다. 현수는 이불을 다시 덮고 눈을 감았다. 아침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테니까.


혀끝에 남은 단맛과 비릿함

그는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았다. 연애 시절, 그녀는 변기 뚜껑을 내리지 않았다. 결혼하면 고치겠지 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생리대를 봉투에 넣지 않았다. 아직 미혼일 때 습관이라더라. 그다음엔 음식물 쓰레기를 바로 버리지 않았다. 우리 집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이거다. 붉은 흔적을 침대 위에 방치한다.

현수는 속으로 계산했다. 결혼한 지 7년, 2,555일. 이 버릇이 완전히 드러난 건 3년 전부터다. 즉, 1,095일 동안 그는 이 냄새 속에서 잠들고 깨어났다.


서윤이의 이야기

서울 삼청동, 작은 카페. 서윤이는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남편이 이를 닦은 칫솔로 발가락 사이를 긁어요. 그대로 칫대에 꽂아두죠.”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했다.

“제가 아는 건 우연이었어요. 3년 전, 화장실에 들어가려다 문이 살짝 열려 있어서 보게 됐거든요.”

처음엔 웃었다. 찐득한 침이랑 발냄새가 섞인 게. 근데 이게 매일이었다. 매일. 그리고 이제는 저도 그 칫솔로 양치를 한다.

“왜냐고요? 그가 먼저 쓴 다음 전염된 냄새를 즐기는 것 같아서.”

서윤이는 찻잔을 돌렸다. 커피 속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를 마주치며.

“이건 병이에요. 우리 둘 다.”


대전의 그들

대전 둔산동 아파트. 이준혁은 매일 밤 11시 30분이 되면 조용히 거실로 나간다. 아내가 잠든 뒤.

냉장고를 연다. 어제 먹다 남은 김치찌개.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한두 숟가락 떠 먹는다. 그리고 뚜껑은 그대로 덮는다. 냉장고에 넣는다.

다음 날 아침, 아내가 뚜껑을 열면 냄새가 확 퍼진다. 떠먹은 자국 위로 곰팡이가 피어 있다.

나는 왜 이걸 계속 할까. 나도 모르겠어. 그냥 내가 먹은 걸 다시 보면 기분이 좋아. 그녀가 버리는 모습도. 그게 우리의 관계야.

이건 5년째 계속되는 의식이다.


금기의 달콤함

심리학자 클리브 번스타인은 말했다. 부부는 서로의 더러움을 공유함으로써만 진정한 친밀감에 도달한다.

이 냄새 나는 붉은 흔적, 발냄새 칫솔, 곰팡이 김치찌개는 사실상 신호다.

난 너의 더러움도 받아들인다. 너도 나의 더러움을 참아줘.

이게 바로 7년 차 부부의 불편한 약속이다.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 지독하다.


침묵이 쌓일수록

현수는 아침 7시, 아내가 일어나기 전에 침대에서 일어났. 붉은 흔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그는 실내화를 신고 거실로 나갔다. 커피를 내리면서 생각했다.

이 집은 어떤 냄새로 가득 찬다. 처음엔 향수 냄새였고, 그다음은 아기 분유 냄새였다. 지금은 생리혈, 발냄새, 곰팡이 냄새다. 시간이 지나면 뭐가 또 올까.

아내가 문을 열고 나온다. 아무 말 없다. 현수도 아무 말 안 한다. 그녀는 흔적을 치운다. 시트를 바꾼다. 그리고 둘은 함께 아침 식사를 한다.


마지막 질문

오늘 밤, 당신 침대 위에 무엇이 올려져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그걸 또 모른 척할까, 아니면 끝내 말을 꺼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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